호로록, 봄에 속다

봄보다 먼저 핀 마음

by 이혜원



강아지 발소리 앞세우고

볕 좋은 길을 걷다가


저 멀리

부끄럽게 연분홍 빛을 발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슴이 먼저 알았어요

어머나

벚꽃이 피었나

진달래가 왔나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볼을 살며시 어루만지고

정신이 호로록

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설레는 마음 붙잡고

가만히 다가가 보니


앙상한 가지 사이로

수줍게 내비친 것은

연분홍 건물 한 면이었네요


어이없어 웃다가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

내가 봄을

이토록 기다리고 있었구나


눈이 속은 게 아니에요

마음이 먼저

봄을 그려낸 거지요


꽃보다 한 발 앞서

피어버린 마음


그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아니요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것이지


강아지는 킁킁

세상의 냄새를 모으고


나는 봄볕 한가운데

가만히 서서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이미 다 본 사람처럼


환하게

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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