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리학 <하이재킹>

"북에 가면 인민 영웅이 된다" / 사회적 배척과 심리적 고통

by 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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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존중받고 있다는 믿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사는 소망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계속해서 외면당할 때, 마음은 조용히 금이 가고 끝내는 깊고도 고요한 외로움 속에 무너져내린다.

그 순간, 어떤 이는 침묵에 잠기고, 어떤 이는 분노로 절망을 밀어내며, 또 다른 이는 그 아픔을 세상에 극단의 방식으로 외치게 된다.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실제로 벌어진 비행기 납치 사건을 배경으로,
세상에서 밀려난 한 인간의 절박한 갈망과 외침을 조명한다.



< 영화 속 인물 용대(여진구)가 겪었던 사회적 배척 >


어릴 적부터 용대는 학교와 마을에서 낯선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의 형이 월북하여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선생님에게도, 또래 아이들에게도 ‘빨갱이’로 불렸다. 누군가의 비난과 조롱은 그의 뒤를 늘 따라붙었다.

한국전쟁 후 불안한 시대적 상황에서,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잊기 위해 타인을 적대하고,'나는 정상 기준이다'라는 안심되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 얄팍한 우월감 느끼고자, 약자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견뎌내던 용대에게, 더 큰 비극은 1968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닥쳐왔다.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명목 아래, 세상은 들끓었고 용대는 끌려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1년 후 출소한 용대는 더욱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굶주림에 지쳐 숨을 거둔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용대의 세계는 무너진다. 사회에 대한 신뢰도, 사람에 대한 기대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건 깊은 상실과 치가 떨리는 분노뿐이다.




< 나를 받아주는 곳으로 가자 >


용대는 출소하던 때, 우연히 들었던 뉴스 보도를 떠올린다. 그것은 북한이 납북 사건의 주범인 조창희에게 200만 달러를 하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면 인민 영웅이 되는구나.'

뿐만 아니라 북에는 용대의 형이 있었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에게 북한은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 고리였다. 용대의 마음속에 위험한 희망이 생겨난다.

용대는 북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가 북을 선택한 이유는 사상의 문제도, 정치적 신념도 아니었다. 그저, 다시 태어나듯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욕망이 그를 이끌었던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세부 정보조차 부족한 세계에 인생을 걸곤 한다. 그곳이 이상향인지, 지옥인지도 알 수 없지만, '당신은 소중한 존재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그 문을 두드린다.

이 현상은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 주변에도 종종 그런 이들이 있다. 너무 오랜 시간, 외로움이라는 그늘 속에서 길을 잃고, 마침내 사이비의 속삭임, 극단적인 집단의 그림자, 또는 위험한 인간관계에 의지하면서 자신을 지워가며 사는 사람들...... 그들은 그 무엇이든 자신의 공허함만 채울 수 있다면 필사적으로 그 대상을 붙잡으려고 한다. 그 길이 파국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소속되고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기에 불길한 느낌을 애써 무시해버린다. 설령 그곳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재산을 잃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더라도 그 궤도를 변경하지 못한다.

용대도 '소속되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나'가 되고 싶어서 항공기 납치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분명 범죄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터져 나온 인정 욕구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 배척을 재경험하는 용대 >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도 용대는 조용한 배척을 경험한다. 공부하는 중학생 옆에 앉으려 말을 건 용대에게, 한 젊은 여인이 다가와 아이를 슬그머니 자기 곁으로 불러 앉힌다. 그녀의 행동은 아무런 말 없이도, 명확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당신은 이 아이와 가까이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그녀가 품었던 마음이 그가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든, 달리기 잘하는 남학생을 미리 자기 편으로 두고 싶었던 계산이었든, 용대는 또 거절당한 존재로 남아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용대의 존재는 유독 눈에 띈다. 마음에 여유를 담은 설렘 가득한 얼굴들 사이에서, 그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초라해 보인다. 신혼의 미소를 머금은 부부, 사법고시 합격 후 어머니의 자랑이 된 청년, 풍요로움이 묻어나는 중년 남성, 사랑받고 자란 듯 단정한 중학생, 전문직에 종사하는 듯한 젊은이들. 용대는 단지 이 비행기 안에서뿐 아니라, 평소에도 주변의 이런 생활 자극들을 통해 점점 더 부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배척으로 인한 높은 공격성과 낮은 공감성 >


결국, 용대는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다. 비행기를 북쪽으로 돌리겠다며, 사람들을 협박한다.

그 가운데, 한 대담한 남자 승객이 용대를 제압하면서 그의 근원적인 고통을 건드린다.

"넌 끝났어, 이 빨갱이 새끼야.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숨도 못 쉬겠다."

그 말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용대에게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부정당하고 짓밟힌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재확인이었다. 그 말속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 동안 사회가 용대를 바라보던 비웃음과 경멸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순간, 용대 안에서 눌러두었던 분노가 무섭게 터져 나온다. 칼을 들어 그의 허벅지를 찔러 보복하고, 이곳이 북한 땅이라고 거짓말했던 부기장에게도, 같은 자리에 칼을 꽂는다. 부기장의 거짓말은 용대에게 진실의 왜곡,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깊은 모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배척은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줄이고, 남성에게는 공격성과 충동성을 높인다. 용대의 행동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심리적·신경생리학적 반응일 수 있다.

그의 공감 결여는 중학생 소년에게 수류탄을 쥐여주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이를 본 한 여성이 아직 어린애에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자 용대는 배의 화상 자국을 드러내며 담담히 말한다.
“우리 반 형들이, 열 살도 안 된 나한테 끓는 물을 부었어. 빨갱이 씨 말리겠다고.”

그에게 소년의 공포는 하찮다. ‘나는 더 어린 나이에 더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왜 이 아이는 고통에서 예외여야 하는가’용대는 그런 식의 메마르고 차가운 감정을 드러내다가 결국, 보안관이 겨눈 총에 맞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배척으로 인한 사회적 사건,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온 것들 >


사람에게 외면당하고 집단에서 밀려나는 일은, 결코 사소한 상처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지닌 고유한 존재의 결이 조용히 찢겨나가는 일이며, 결국 심리적 손상을 받은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극단적인 사건 중 일부는 단지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엔 너무나 외로운 비명이 담겨 있다. 따돌림으로 인한 자살, 취업 실패 뒤의 극단적 선택, 공공장소에서의 무차별 범죄, 데이트 폭력 등—여러 비극의 이면에 ‘배척’이라는 공통된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 배척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정상’이라는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오래도록 소외되어온 이들을 향한 무관심은 범죄 가해자를 무한 생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비극을 안길 수 있다. 타인의 상처에 조금 더 예민해지고, 배척보다는 포용의 시선을 가지려는 개인과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ㅡ 사회적 배척을 경험한 개인에게 나타나는 심리적·행동적 변화 ㅡ

1. 심리적 반응

① 낮은 자존감

배척은 *"나는 가치 없는 존재야"*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자기혐오나 열등감으로 이어지기 쉽고, 자아 정체성에 균열이 생긴다.

② 우울과 불안

지속적인 소외는 우울증이나 사회불안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두렵고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③ 무기력감과 절망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경험은 깊은 무력감과 삶에 대한 흥미 상실로 이어진다.

④ 분노와 적대감

억울함과 외로움이 쌓이면 ‘세상에 대한 분노’로 변하기도 한다. 특히 오랫동안 억눌린 감정은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2. 행동적 반응

① 회피 및 위축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고, 고립된 생활을 선택하게 된다. 자기표현을 두려워하고,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다.

② 과잉동조 또는 눈치 보기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동의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타인에게 과도하게 맞추려는 행동을 한다.

③ 공격적 또는 반사회적 행동

외적 표현으로 감정을 해소하려는 일부는 공격성이나 폭력성으로 반응한다. 이것이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④ 왜곡된 소속 추구

극단적 종교, 위험한 집단, 유해한 관계 등 ‘어디든 받아주는 곳’에 매달리게 된다. 소속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기도 한다.

출처 : 사회적 배척과 심리적 통증- 저자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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