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윌슨이 없었더라면 / 자기 대상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홀로 외딴섬에 갇혀 있다.
구조의 조짐조차 사라진 수평선 너머로, 시간은 매일 유배처럼 흘러간다. 탈출하려는 열정으로 불타던 마음은 옅어지고, 슬픔은 깊어진다.
체념으로 섬에서 적응해갈 무렵. 파편 하나가 파도에 실려온다. 그것은 알루미늄 재질의 잔해였다. 그는 그것으로 돛을 만든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파도를 가르며 섬을 떠나는 순간,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이 깃들어 있던 그 섬이 점점 멀어진다. 죽고 싶게 만들었으나, 끝내 그를 살게 했던 섬. 시야에서 그 섬이 천천히 사라져갈 때, 그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그러나 구원은 아직 아니다. 뗏목 위에서 그는 다시 속절없는 표류자가 된다. 섬에서는 적어도 물과 불, 잠을 누릴 수 있었지만, 대양 위에서는 갈증과 굶주림, 뙤약볕이 날마다 그를 짓이긴다.
그때, 또 한 번의 우연이 기적처럼 다가온다. 지나가던 화물선이 자포자기한 그를 발견한 것이다.
결국, 그를 탈출하게 해준 건 알루미늄 조각과 지나가던 화물선—두 개의 부유물이었다.
< 그를 버티게 한 존재 — 살아야 할 이유 >
문득 되묻게 된다. 그 두 가지의 구원이 오기 전, 긴 시간 무엇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했을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이유는 단순해 보였다. 그는 살아야 했고, 살아내고자 애썼다. 그 모든 과정은 생존에 대한 의지와, 다시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가겠다는 희망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는 영화는 새로운 질문을 건넸다. 그토록 가혹한 고립 속에서 그가 미치지 않고 자기 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진짜 힘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은 확신한다. 그는, 자기대상을 곁에 두고 있었다. 바로, 윌슨이다.
< 코헛의 자기심리학 — 관계로 구성되는 자기 >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은 자기를 고립된 실체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성장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는 이러한 관계 안에서 자기를 지탱해주는 심리적 대상을 ‘자기대상(selfobject)’이라 불렀으며, 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 거울 자기대상: 감정과 성취를 반영하고 인정해주는 존재로, 자존감의 기반이 된다.
• 이상화 자기대상: 강하고 안정적인 타인을 통해 의지와 동경을 투사할 수 있는 존재다.
• 쌍둥이 자기대상: 나와 비슷하고 함께 있다는 소속감과 일체감을 주는 존재다.
이 세 가지 자기대상이 조화롭게 충족될 때, 자아는 안정되고 탄력 있게 유지된다.
< 윌슨 — 세 겹의 자기대상 탄생 >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극한의 고립 속에서, 분노에 내던진 배구공 하나를 다시 집어 든다. 공에 묻은 핏자국 위에 눈과 코, 입을 그려 넣고, 이름을 붙인다. 윌슨. 그 순간, 그는 자기(self)를 지탱할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기대상의 탄생이었다.
1. 거울 자기대상
처음 불을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그는 내내 윌슨을 바라본다. 마치 의견을 구하듯, 응원을 청하듯 간절하고도 뚫어지게 그를 응시하며 양손에 마찰을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불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다. 섬에 고립된 이후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윌슨이 자신을 바라봐주길, 들어주길, 인정해주길 바랐기에 말을 걸었던 것이다. 윌슨은 그의 감정을 비추고, 존재를 확인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 이상화 자기대상
그 후, 그는 윌슨과 함께 섬의 위치를 추측하고, 탈출 계획을 세운다.
의연하고 단단한 존재에 기대고 싶기에, 그는 윌슨에게 마음을 기대는 것이다. 윌슨은 언제나 곁에 있고, 언제나 묵묵히 그를 바라본다. 그는 윌슨에게 말한다.
“우리 이 섬에서 나갈 수 있을 거야. 나한테 좋은 계획이 있어.”
그리고 그 말이 진실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윌슨이 그 말에 조용히 동의해주기를 원한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두려움과 결핍을 윌슨이라는 존재에 이입함으로써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는다.
윌슨은 이상화된 타자가 되어 그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고, 그의 미래를 ‘믿어주는’ 역할을 해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
3. 쌍둥이 자기대상 — 함께 존재함의 감각
윌슨은 그가 지켜주고 싶은 또 하나의 분신이다. 그 마음은‘함께 있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그는 윌슨 덕분에 더 이상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해 질 무렵, 그는 윌슨과 나란히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본다. 윌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의 감정은 충분히 공유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쌍둥이 자기대상이 수행하는 역할이다. 코헛은 말했다. 자기(self)는 “나도 너와 같아”라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안정되고 단단한 구조를 이룬다고.
우리는 타인 안에서 나와 닮은 무언가를 발견할 때, 비로소 더욱 견고한 자기감각을 갖는다. 그는 윌슨을 통해 공감받는 감각을 경험하고, 그 공감은 다시금 그를 ‘살고 싶은 존재’로 되돌린다.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 그 감각 하나만으로, 절망은 견뎌지기도 한다.
< 이별의 순간 — 존재의 일부를 떠나보내다 >
바다는 냉정하고, 파도는 무심하게 윌슨을 휩쓸어 간다.
떠내려가는 윌슨에게 그의 손이 닿지 않는다. 닿을 수 없는 거리다.
그는 뗏목 위에서 울부짖는다.
“윌슨! 손이 안 닿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윌슨…”
그에게 그것은 단순히 공이라는 물건을 잃는 슬픔이 아니다.
그를 지탱하던 심리적 구조, 즉 자기를 구성하던 일부를 떠나보내는 존재의 상실이다.
그 순간, 그는 진정한 조난자가 된다.
그동안 지켜냈던 자기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텅 빈 심연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계속 숨을 쉰다.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 그는 윌슨을 만들고, 윌슨은 그를 지탱했다 >
거울 자기대상, 이상화 자기대상, 쌍둥이 자기대상.
그 세 겹의 기능을 윌슨이라는 존재는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비추기 위해 윌슨을 만들었고, 의지할 수 있는 힘을 윌슨에게 부여했으며,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윌슨을 옆에 두었다.
사람은 항상 누군가와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윌슨은 관계를 필요로하는 그의 마음이 빚어낸 또 하나의 자아이자, 그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준 자기대상의 총합이었다.
ㅡ 자기대상의 부재가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 ㅡ
자기대상이 결핍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반복적으로 경험될 경우, 개인의 자기 구조는 쉽게 균열되거나 붕괴된다.
특히 유년기 부모와의 관계는 자기 형성에 있어 핵심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이 시기에 충분하고 안정적인 자기대상 경험을 누리지 못한 자아는 성인기에도 지속적으로 타인의 인정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내면의 공허와 불안과 결핍을 보상하기 위해 과도한 성취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코헛(Heinz Kohut)은 이를 ‘자기 구조의 붕괴(breakdown of the self-structure)’라고 개념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