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리학 <시민 덕희>

손 대리는 제보할 수밖에 없었다 / 불안의 유형 세 가지

by 예심


<시민 덕희>는 한 여성의 용기에서 비롯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목소리 하나가 숨어 있다. 그 목소리는 한때 범죄의 한복판에 있고, 거짓된 삶 속에서 무너져가며, 끝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선택하는 한 남자의 것이다. 그는‘손 대리’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납치되어 가해자로 살아가는 시간들. 그러나 그는 침묵하지 않는다. 공범에서 내부고발자로 거듭나기까지, 그는 수많은 불안을 지나온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불안을 세 가지로 나눈다. 현실적 불안, 도덕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이는 자아가 외부 세계와 초자아, 원초아 사이에서 겪는 내면의 떨림이다.
《시민 덕희》는 바로 이 세 갈래 불안을 거쳐, 어떻게 인간이 깨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글은 그 불안의 결을 손 대리라는 인물을 통해 따라가 본다.

< 현실적 불안 – 벗어날 수 없는 공포의 구조 >

현실적 불안은 자아가 실제 외부 세계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일어난다.
손 대리의 삶은 자유도,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철저한 노예의 삶이다.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이끌려 낯선 땅에 발을 들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납치와 감금,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보이스피싱 업무다. 그 현실은 그저 참담하다.
교도소는 비록 자유를 제약하는 공간이지만, 최소한 끝이 정해진 형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손대리가 감금당한 곳은 기한조차 없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철저히 소거된 채, 협박과 폭력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언제든 파괴될 수 있다는 공포가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다.
그의 욕망은 단 하나, 집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뿐이다. 그러나 돌아갈 길은 보이지 않고, 시간은 정지된 채 흘러간다. 자유는 지워지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목소리는 봉인된다.

< 도덕적 불안 – 초자아의 울림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 >

도덕적 불안은 자아가 윤리적 요구에 응답하지 못할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고통이다.
손 대리는 매일 거짓 전화를 건다.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목소리가 자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은행 직원을 가장해 선량한 이들의 신뢰를 빼앗고, 그들의 전 재산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작업. 그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처럼 납치된 청년들을 또다시 조직에 끌어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합법적인 일자리라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결국 감금의 세계로 이끄는 임무.
그는 날마다 도덕적 딜레마 앞에 선다. 그 모든 행위가 생존이라는 단어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나는 나쁜 사람일까.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물음은 밤마다 그의 숨을 막고, 잠을 밀어낸다. 인간으로서의 자격, 꺼지지 않는 죄책감, 타인의 울음 위에 놓인 자신의 존재.
조직은 그의 입을 막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양심까지는 억누르지 못한다.




< 신경증적 불안 – 억눌린 자아의 비명 >

신경증적 불안은 자아가 원초아의 충동을 견제하지 못할 때, 내면 깊숙한 곳에서 분열과 혼란을 일으킨다.
손 대리는 그 혼돈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간다. 겪어온 것들, 강요받은 행위들, 억눌렀던 감정들이 분노와 수치, 공포의 뒤얽힌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그는 파멸로 치닫는 여러 사람을 목도한다. 처음엔 모두 본능을 억누르며 복종하던 이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한계를 넘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윗선에 대항하다 목숨을 잃고, 불복종의 대가로 불구가 되고,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약물로 정신을 마비시키는 사람들. 그 광경 앞에서 손 대리는 두려움에 떤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


< 감정의 균열 위에서 피어난 용기 >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겨내며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붙든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다시 찾은 것이다.
“저, 제보하겠습니다.”
손 대리는 더 이상 사기집단의 부속품이 아니다. 그는 벗어날 길 없을 것만 같던 구조의 압박 앞에서, 분명한 증언자가 된다.
그의 제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이자,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외침이다.

우리는 불안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손 대리처럼 그 불안 앞에 직면할 것인가.
불안은 단순히 파괴를 불러오는 감정이 아니다. 때로는 삶을 지키는 마지막 끈이 되기도 한다.



ㅡ 덕희의 입장에서 보는 불안 세 가지 유형 ㅡ

1. 현실적 불안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고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 경찰과 금융기관의 외면을 마주한다.

2. 도덕적 불안– 행동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다른 피해자를 외면할 수 없다는 양심의 목소리에 괴롭다.

3. 신경증적 불안–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내면의 혼란.
고발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감당하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긴장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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