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으로 들어서다
< 출산, 상상했던 것과 다른 육아 >
20대 중반, 희망이를 낳았다. 3.5KG의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처음 내 아이를 본 순간은 아직도 또렷하다. 신생아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눈도 채 뜨지 못한 팔뚝만 한 생명. 손에 닿지도 않는 내 아이를 향해 나는 공연히 유리창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경이롭다’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육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신혼집을 마련하자마자 사업을 시작한 아이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요즘은 아이 돌봄 서비스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어리숙한 나이에 혼자 감당하는 육아는 무섭고 벅찼다. 내가 상상했던 육아는 아니었다. 기저귀 광고와 분유 광고 속, 방실방실 웃다가 품에 안기면 스르르 잠드는 아기. 나는 육아를 그런 이미지로만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밤낮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함께 울었고, 기고 서고 걷고 뛰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쁘기도 했지만, 체력이 약하고 내향성이 짙은 나는 육아가 몹시 힘겨웠다. 또래의 친구들은 남편의 퇴근이나 휴일에 잠시 숨을 고른다는데, 연락도 없고 가끔 나타나는 희망이 아빠를 향한 분노와 내 처지에 대한 서러움이 쌓여갔다. 임신 후 23KG이 체중이 불어났었는데 아이 100일도 안되어 딱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체중이 다 빠졌다. 입술이 부르트고 입 안도 자꾸 헐었다. 20대인데도 흰머리가 나고, 걷는 것도 힘에 겨워 잠시 멈춰 설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희망이는 세 돌이 지나도록 숟가락을 쥐지 못하고 손으로 밥을 집어먹었다. 숟가락을 쥐여주면 테이블을 계속 내리쳤다. 놀이터에 데려가도 다른 아이들처럼 미끄럼틀이나 그네에는 관심이 없었고, 모래를 자기 몸에 뿌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지나가다 계단을 보게 되면 수십 번씩 오르내렸다. 그만하자고 말리면 분노가 폭발했다.
< 희망이, 자폐 검사받아 보세요 >
아이 세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이가 울기 시작하면 옆 반 선생님들까지 구경하러 올 정도로 대차게 운다는 말을 들었다. 원래는 1년에 한 번 반을 옮기는데, 희망이는 몇 달 만에 반이 바뀌었다. 그 소식을 담당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을 통해 전달받았다. 힘들어서 감당이 안 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내 아이가 케어하기 어려운 아이이긴 하구나, 조금씩 남다른 성향을 인식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부모 참관수업에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당부가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
그날 교실에서 마주한 아이는 평소와 같았지만 집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질문에 답하고 율동을 따라 하며 눈을 맞출 때, 희망이는 바닥에 누워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바퀴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굴러가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하는 색칠 시간에도 아이는 바닥에 누워 자동차만 굴렸다. 앉혀놓으면 다시 누웠고, 크레파스를 쥐여주면 부러뜨렸다. 난처함에 뒤돌아보니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격감을 받기를 원하는 시선 같았다. 참관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엄마의 요청에 따라 선생님에게 손 하트와 배꼽인사하며 유쾌한 작별인사하는 교실에서, 나와 희망이의 퇴장은 유난히 초라했다.
며칠 뒤,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면담요청이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참관수업 후 이야기를 꺼내는 게 엄마가 받아들이기 수월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배려였던 것 같다.)
차를 대접받으며 마주 앉은자리에서, 원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직업 특성상 많은 아이들을 보아왔는데, 희망이가 내는 특유의 음성, 바퀴에 대한 집착, 장난감을 일렬로 세우며 노는 행동 등에서 자폐증 느낌이 왔다는 것이었다. 원장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란다며, 단순한 발달 지연일 수도 있으니 병원에 방문하여 정확한 검사 권유를 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울지 마세요. 아직 젊고, 사지 멀쩡한데 뭐가 문제예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요…” 그 뒤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때 내 관심사는 오직 이것이었다. 내 아이는 정상인가, 장애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 진단을 받다 >
사업으로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하던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장이 그러는데 아이가 자폐인 것 같데. 검사받아보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병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자폐를 본 적이나 있데? 우리 집안에 자폐가 있어서 하는 소린데, 희망이는 아니야. 어린이집 당장 옮겨! 병원은 무슨 병원이야. 너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어?”
그의 말처럼 시댁 식구들 가운데에는 자기 그림자만 바라보며 껄껄 웃고,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소통이 전혀 않되는, 중증 자폐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 시가에서는 자폐나 지적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교육 종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에게 자문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는 아닐 거야’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혹시 정말 자폐가 맞다면 그건 유전 탓이지’라는 분한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소아정신과 상담에서 아이의 특성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의사는 엄마의 관찰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고,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대기자가 많아 다음 달에나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한 달 기간 동안……속이 타들어갔다. 바보 같지만, 예약일이 다가오기 전, 나는 한번 예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직면하는 게 두려웠다. 진단이 내려지면, ‘희망이는 자폐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 같았고, ‘엄마가 문제가 있었겠지’라는 시선이 나를 향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조차도 내 아이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가능한 한 검사를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자폐성향 조기 발견과 개입이 중요하다는 정보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나 병원에 갔다. 아이는 병원 분수대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약 시간이 다되어 검사실에 들어가려고 손을 잡아끌자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쳤다. 사람들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몰라….’ 마음 한편에 자꾸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지능검사와 언어 검사 등 여러 복잡한 절차가 끝난 뒤 최종 면담이 이어졌다. 의사는 손깍지를 뒷머리에 낀 채 희망이를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그 침묵이 이상하리만큼 길에 느껴졌다.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어 내 앞에 놓였다. 김희망. 자폐성장애 1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