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생겼을까.

네 잘못이 아니야.

by 예심

< 왜 이런 일이 나에게 >


진단지를 받아 든 날 이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왜 하필 우리일까.

왜 내 아이일까.

왜, 나일까.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어려움 앞에 서자, 나는 어떻게든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가도,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이가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도 왜일까? 하는 질문은 수시로 튀어나왔다.


영문을 알 수 없이 자꾸만 대차게 우는 아이를 업고 새벽 도시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을 때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입덧을 심하게 해서였을까.

제왕절개를 해서였을까.

모유수유를 끝까지 하지 못해서였을까.

내 아이는 언제부터 사회가 말하는 ‘정상 궤도’를 벗어난 걸까.

어떤 순간이 결정타였을까.

어떤 나의 선택이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았을까.

왜 호명 반응이 사라졌을까.

강아지도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얼굴은 굳어졌고 아이가 ‘평범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마다 마음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래, 세상이 완전히 무작위일 리는 없어.

제비 뽑기처럼 불행이 이유 없이 오진 않을 거야.


임신 때부터 나의 삶 모든 장면들을 의심의 눈으로 돌아보았다.




<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


의사가 내게 해 준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머리까지만 닿았고 가슴까지는 내려오지 못했다.


나는 다른 전문가들의 말과 논문과 다른 엄마들의 경험담을 끝없이 찾아 헤맸다.

자폐는 선천적이라는 말, 자폐는 후천적이라는 말, 유전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설명, 정상 발달을 보이다가 뇌의 염증이나 시냅스 이상 등으로 퇴행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상반되는 주장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 뒤에는 언제나 같은 문장이 따라붙었다.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명확한 원인이 없다는 것. 그 말이 내게는 가장 잔인하게 들렸다.


차라리 내게 유죄를 선언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호함보다는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이유 없는 불행보다 차라리 내 잘못인 편이 견딜 수 있었으니까.




< 네 잘못이 아니야 >


발달장애 아이들을 교육하는 어린이집을 알아보다가 수녀가 운영하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입소 상담을 받으러 간 자리였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동안 눌러두었던 말을 하나 둘 쏟아내었다. 아마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다독임과 안심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돌 무렵에는 옹알이도 했고, 잼잼 곤지곤지도 했었는데요......"

수녀는 내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온화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조금 편하게 가지셔도 될 것 같아요."

세상의 가혹함과 따뜻함을 모두 건너온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과 말투였다.


수용인원이 다 차, 결국 그곳에 입소하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며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어렴풋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모닥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그 따뜻한 감각적인 말 때문인지 생각이 서서히 정리가 되었다.

그래, 선천적이면 어떻고, 후천적이면 또 어떤가. 이 상황은 나 혼자 만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이 나라의 공기를 마시고, 이 나라에서 판매되는 음식을 먹고, 규정대로 예방접종을 했고, 다른 부모들처럼 미디어가 흐르는 환경 속에서 아이를 키웠다. 제왕절개와 분유수유는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고, 독박육아 역시 나만의 특수한 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수없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폐에는 강한 유전적 기반이 있지만 그 유전학은 여전히 복잡하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한 엄마의 잘못이라 말하기엔 생물학적이고, 구조적이며, 집단적인 문제가 촘촘히 얽혀 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이제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어려움을 껴안고 적응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낼 것인가. '


나는 지금도 영화 굿 월 헌팅 속 상담가의 말을 오래 붙잡고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요."

"아니, 넌 아직 몰라.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을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어딘가의 엄마에게 꼭 건네고 싶다.

자폐자녀 양육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통과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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