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리학 <홍등>

"오늘은 둘째 부인 처소에 홍등을 켜게" / 변동비율강화

by 예심

어느 남성 연예인이 자신에게 무관심한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초반에는 자주 연락하고 선물을 건네며 다정하게 다가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관심을 끊어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없었던 무심함’을 드러내면, 오히려 상대가 더 애가 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심리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애정을 쏟다가 무심해졌다가, 다시 다정해지는 식의 예측 불가능한 보상은 사람의 마음을 훨씬 더 강하게 끌어당긴다. 이는 심리학자 B.F. 스키너(B.F. Skinner)가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에서 제시한 변동비율 강화(variable ratio schedule)의 대표적 사례로, 불규칙한 보상은 강한 중독성과 집착을 유발한다.


영화 〈홍등〉은 이러한 ‘불규칙한 보상’의 틀 안에서, 거짓말과 모략등의 방법으로 경쟁의 움직임을 보이는 여인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 그의 동침 상대로 선택되면 보상이 온다 >

대저택의 주인 진 씨는 막대한 부를 지닌 재력가로, 네 명의 여인과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살아간다. 그에게 ‘오늘 밤의 여인’으로 선택되면, 그 여인의 처소에는 붉은 홍등이 줄지어서 찬란하게 켜지고, 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으며, 원하는 음식을 고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여인들은 대저택의 주인을 사랑해서 그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다. ‘선택받은 자’라는 달콤한 정체성과 그에 뒤따르는 세 가지 보상 때문에 그들은 그날 밤의 주인공이 되기를 갈망한다.


홍등, 발 마사지, 음식 선택권——이 세 가지 보상은 감각을 자극하는 정교하고 치명적인 체계다. 홍등의 붉은빛은 시각적 쾌감이자 권력의 상징이며, 발 마사지는 피부로 느껴지는 촉각적 만족을 선사한다. 저택 전체에 울릴 만큼 요란한 발 마사지 소리는 청각을 자극하고, 음식 선택권은 미각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 길들여지고, 집착하다 >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감각적 보상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송련이라는 인물을 통해, 하나의 인격이 어떻게 서서히 불합리한 체제에 적응하고 길들여지는지를 보여준다.


열아홉 살의 나이에 첩으로 대저택에 들어왔던 송련은, 처음에 자존심과 주체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저택에서 보낸 꽃가마를 못 본 척 돌려보내고, 자신의 발로 먼 길을 걸어 저택 안으로 들어섰으며, 하인이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호의에도 정중히 사양했다. 첫 발 마사지를 받을 때에는, 마치 그 극진한 대접이 부담스러운 듯, 겸연쩍고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저택의 질서와 보상의 규칙에 조금씩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마사지를 받을 때면 눈을 감고 조용히 그 쾌감을 누리게 되고, 식탁에 먹고 싶지 않은 반찬이 올라오면 눈에 띄게 언짢아하며 음식 선택권이 돌아오는 날을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붉은 홍등이 찬란하게 밝혀지는 밤에는 기분이 한껏 고양되고, 홍등이 일제히 꺼진 어두침침한 처소에서는 마음까지 가라앉는다. 무엇보다 주인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질수록, 하인들의 태도마저 서늘해져 자존감이 깎인다. 그렇게 송련은 '선택받는 자'로서의 달콤한 보상에 점점 더 목말라하게 되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홍등을 켜고 싶어 한다.


이 대저택에 들어오기 전, 단단하게 쥐고 있던 주체성은 이제, 언제 켜질지 모르는 홍등의 불빛 앞에서 조용히 흔들린다.




<질투와 증오의 구조: 연대가 아닌 경쟁>


홍등, 발 마사지, 음식 선택권이라는 보상은 여인들을 자연스러운 연대의 관계가 아닌 냉혹한 경쟁 구도로 밀어 넣는다. 그 이유는 누군가가 저택 주인의 밤 동반자로 선택되어 이 세 가지 보상을 누리는 순간, 다른 이들의 권리는 즉시 박탈되기 때문이다. 선택된 이는 세상의 중심에 선 것 같은 우월감과 특권을 맛보는 반면, 선택되지 못한 이들은 열패감과 자존감의 침식을 견뎌야 한다.


여인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바라보는 감정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경쟁의 감정은 타인의 밤을 방해하기 위한 소란한 노래로 표현되기도 하고, 극단적 복수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임신한 여인을 시기해 몰래 독약을 먹이고,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승리의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비인간성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불공정하고 부패한 구조와 그 안에서 작동하는 불규칙한 보상 시스템이 서로를 적대자로 볼 수밖에 없게 만든 결과다.




< 무감각해져 가는 사람들>


진짜 두려운 것은, 부패한 구조 속에서 사람의 감정이 점차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택에 가장 먼저 들어온 첫째 여인이 그러하다. 이제는 나이가 지긋이 들은 그녀는 다른 여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질투와 분쟁, 고통과 절망에 무관심하다.

“밥이나 먹어라. 나리 분부대로 하면 돼.”

그녀의 이 담담한 한마디는, 오랜 세월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드러낸다.


그녀 또한 한때는 질투와 경쟁의 구조 속에서 힘겹게 버텨야 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느끼지 않기로 선택했고, 그렇게 무감각함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감정을 억누르고 체념하는 삶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게 되는 상태—즉,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노인이 된 하녀 역시 그러한 무감각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가문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끌려가고 있을 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심히 말한다.

“웬 눈이 이리 많이 내릴꼬. 내년엔 풍년이려나.”

이 저택에서 오랜 세월 하녀로 살아온 그녀는, 보아도 못 본 척하고, 느껴도 느끼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벌을 피하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견딜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감정을 지운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지워가는 일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통제와 억압은 사람의 감정 체계를 점차 둔감화시킨다. 자신의 감정을 희미하게 느낄수록,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역시 무뎌질 수밖에 없다.




< 각성, 그리고 무너지는 송련 >


임신했다는 거짓말이 들통난 뒤, 송련은 한동안 저택 주인의 밤 동반자로 선택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열패감에 사로잡혔을 그녀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송련은 홍등이 켜진 다른 여인의 처소를 보며 조소를 짓는다.


어느 날 새벽, 송련은 저택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본다.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펼쳐지고, 눈앞에 들어오는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커다란 틀로 보인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이 공간이 하나의 ‘시스템’임을 인식한다. 외부에서 밀려드는 자극에 반응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자신이 어떤 구조 속에 갇혀 있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들을 조종하고 망가뜨리는 이 저택 안에서, 자신 역시 그 체계의 일부로 굴복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송련은, 평소 경쟁자로 여겼던 첩에게 조용히 말한다.

“홍등을 켜든, 꺼버리든, 이제 상관없어요. 이 집에서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어요. 고양이나 개, 쥐 같기도 한데... 확실히 인간 같지는 않아요.”

그 말속엔 모든 것을 깨달은 자의 허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말 너머에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이 불합리한 구조에 내 행복이 달려 있어야 하지?’

‘왜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지?’

송련은 오랫동안 이 질문들을 외면한 채, 오직 선택받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송련은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두 여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죄책감은 결국 그녀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만다.




< 영화 홍등이 묻는 삶의 질문 >


우리는 과연 건강한 보상 체계 안에 있는가?

당신은 어떤 보상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며 점점 무감각한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송련이 새벽녘 저택의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듯, 우리도 잠시 멈춰 지금의 삶과 그 안에 자리한 체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자신을 둘러싼 체계를 깨닫지 못한 채 무심히 살아가는 것, 바로 그 무지와 무감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1. 변동비율강화의 심리학적 원리

변동비율강화(variable ratio reinforcement)는 심리학자 B.F. 스키너가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에서 제안한 강화 방식 중 하나이다. 이 방식에서는 보상이 고정된 횟수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간격으로 주어진다. 유기체는 보상이 언제 주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자주, 더 끈질기게 행동을 반복한다.


2. 스키너의 실험에 비추어보는 영화 홍등

스키너는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쥐가 레버를 누르면 일정한 횟수마다 먹이를 주는 ‘고정비율강화’ 조건보다, 몇 번 눌러야 보상을 받을지 알 수 없는 ‘변동비율강화’ 조건에서 훨씬 더 끈질기게 레버를 누른다는 것을 입증했다.


<영화 홍등 속 보상과 행동: 먹이와 레버>

-보상(먹이): 주인의 선택과 그로 인한 특권이다. 홍등 켜주기, 마사지 받기, 음식선택권, 하인들의 대접과 자존감 회복 등

-행동(레버 누르기): 보상을 얻기 위한 전략이다. 순종적으로 굴기, 경쟁 아내를 모함하기, 외모와 말투 등을 꾸미기, 임신했다고 거짓말하기 등


그녀들의 이러한 행동은 보상이 규칙적으로 주어지지 않을수록 더욱 반복되었다. 이는 스키너의 실험에서 변동비율강화 조건의 쥐가 더 끈질기게 레버를 누른 것과 같은 원리다.


3. 현대 사회에 드리운 변동비율강화의 그림자

현대 사회의 디지털 플랫폼, 소비 구조, 조직 문화 등 곳곳에서도 변동비율강화의 원리가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 힘은 개인의 주체성과 감정을 잠식할 만큼 강력하다.

불확실한 ‘기대’라는 불꽃을 피워 올리는 이 구조는 동시에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과 진정한 행복을 갉아먹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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