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요” / 미해결과제
심리학자 펄스(Perls)는 삶에 미해결과제가 켜켜이 쌓이면 심리적 혼란이 찾아온다고 바라보았다. 미해결과제란 과거의 욕구나 감정이 채 풀리지 못해 마음속을 떠돌며 지금 이 순간을 흐리는 유령 같은 존재다. 아침에 배우자와 다투고 출근하자마자 그 기억이 일을 삼키듯 스며드는 것, 바로 그것이 미해결과제다.
한국적 정서로는 ‘한’이라 부르는 응어리와도 맞닿아 있다. 원한·그리움·죄책감·아쉬움·미련 같은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면 현재의 삶이 선명하게 빛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 안의 미해결과제를 찾아내고, 완결하거나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스스로 환경과 접촉해 매듭지을 수도,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 빈 의자‧두 의자 기법 등으로 완결을 시도할 수도 있다. 때로는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 순간 전경에 머물던 미해결과제가 배경으로 물러나며, 우리는 다시 생생한 삶을 걸어갈 수 있다.
< 미해결과제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 >
경찰 해준(박해일)은 해결하지 못한 폭력·살인 사건을 삶 한가운데에 걸어두고 살아간다. 집 한쪽 벽엔 사건 자료가 빼곡히 붙어 있고, 눈길이 닿을 때마다 미궁 속 이미지가 머릿속을 휘젓는다. 잠은 얕고 깨지기 일쑤여서 불면증은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가 해준의 밤을 바꾼다. 미결 사건으로 가득 찬 마음속에 서래라는 존재가 파고들고, 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해준은 서래를 ‘업무 대상’이라 여겼으나, 자료 수집과 대화·관찰 속에서 공적인 마음은 사적인 정으로 변해 간다. 그녀의 집 앞에서 잠복하며 녹음한 속삭임에는 서래를 향한 애정이 그대로 스민다. 감시라기보다 관심이며, 수사라기보다 호기심이다.
외국인 특유의 어투와 단어 선택도 해준의 마음을 흔든다. 서래는 사람 속을 읽어내는 능력까지 지녔으니, 정서적 교감이 서툰 해준의 아내와 달리 그의 속내를 세밀히 어루만진다.
“그래서 못 자는 거예요… 피 흘리는 사진들이 비명을 지르니까.”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네.”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중단합니까?”
서래의 언어는 해준의 고단한 밤을 달래는 자장가가 되었고, 그 곁에서 그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누렸다. 그녀를 지켜주며 느끼는 존재감 또한 해준에게는 기묘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살인자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나타나자, 해준은 무너진다. 직업 윤리를 저버렸다는 자괴감 속에서 그는 서래에게서 돌아서며 “폰을 바다 깊은데 빠뜨려 아무도 못 찾게 하라”고 남긴다.
< 해준의 미해결과제가 되고 싶었던 서래 >
서래는 자신이 용의자가 되어 해준의 물음과 시선 안에 머무르는 것을 기꺼워했다.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날 책임지는 형사가 품위 있어서.”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과거의 그림자가 얼핏 비친다. 어머니를 돌보고 노인 간병을 업으로 삼으며, 폭력적인 남편에게 사랑과 돌봄을 빼앗기고 산 시간들. 해준의 자상하고 섬세한 관심은 그녀에게 처음 맛본 따뜻한 빛이었다.
해준이 녹음해 둔 관찰 기록을 듣다 눈가가 젖어드는 서래의 모습은 그래서 더 처연하다.
“책과 공책을 펴놓고 몇 시간이고 글씨를 쓴다… 우는구나. 마침내.”
서래에게 그 파일은 사랑 고백이자 존재 증명이었다. 그녀는 해준에게 묻는다.
“사건 해결하면 파일 지우죠?”
서래는 서둘러 기록을 다른 곳에 옮겨 놓는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증언을 지키고 싶어서였을까.
해준의 삶에서 미결 사건이 차지하는 무게를 알게 된 서래는, 증거를 발견한 그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야 함을 이해한다. 그러나 마음은 따르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해준이 근무하는 바닷가 마을 이포로 향하고, 살인사건을 고의로 일으켜 만날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 그렇게 서래는 용의자의 신분으로 해준앞에 다시 선다.
하지만 이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고, 해준은 냉랭한 태도로 서래에게“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냐”고 되묻는다. 서래는 쓴웃음을 흘리며, 관계의 끝을 직감한다.
서래는 해준의 평생 미해결과제로 남고자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시신이 발견되면 자살 사건으로 완결되고 말 테니, 그는 영영 찾을 수 없는 장소를 택해 죽음을 맞는다. 안개처럼 모호하고 잡히지 않는 기억으로 평생 남기 위해서……
해준의 사건 자료를 들여다보며 했던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네”라는 말은 결국 서래 자신이 되었고, “(증거를)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라는 해준의 요청은 그녀의 마지막 행로가 되었다. 만약 서래가 스스로 사랑받을 존재라는 확신을 지녔다면, 혹은 누군가 그 확신을 건네주었다면, 비극적 종착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택해서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바라야 했던 서래의 마음이 아프게 저릿하다.
“난 해진 씨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서래의 대사 中
ㅡ 미해결 과제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 ㅡ
1. 심리적 불안 증가 (Zeigarnik 효과)
o 미해결 과제는 뇌에 긴장 상태를 유지시키며, 사람들은 완료된 과제보다 미완료 과제를 더 잘 기억한다.
o 이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집중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2. 수면의 질 저하
o 미해결 과제가 많을수록 잠들기 전 과제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이는 수면 시작과 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 생산성 저하
o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지 않거나 미해결일 경우, 우선순위를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시간 낭비가 발생한다.
o 작업 전환 비용이 증가하여 멀티태스킹 중 비효율성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