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리학 <내 사랑>

"당신과 있으면 바랄 게 없어" / 애착 유형과 획득형 안정애착

by 예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낯설고 모호한 자극 속에 놓인다. 불안정한 상태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지만, 주 양육자가 따뜻하게 보듬고, 섬세히 돌보며 욕구를 채워줄 때, 아이의 마음속에는 ‘세상은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이 자리잡는다. 그렇게 아이는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으며,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환경—방임하거나 과도한 통제, 조건적인 사랑만이 반복되는 삶에서는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 차갑고 위험한 곳’이라는 감각이 아이의 몸과 마음에 뿌리내린다. 이는 지나친 의존과 집착, 혹은 타인과의 무감각한 거리 두기로 나타나며, 결국 어른이 되어도 관계 속 불화의 씨앗이 된다.


발달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는 이러한 애착을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안정형: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 역시 존중한다. 문제 앞에서 비난보다 소통을 선택하며, 세상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탐험한다.

회피형: 자신은 긍정하지만 타인을 경계한다. 가까운 관계를 불편해하고, 무심하고 냉소적인 거리감을 유지한다.

불안형: 자신에게는 부정적이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기대를 품는다. 애정과 관심을 갈망하며, 서운함을 자주 드러낸다.

혼란형: 자신도 타인도 신뢰하지 못한다. 회피와 불안이 뒤섞여, 혼자이기도 어렵고 가까이도 어렵다. 스스로조차 예측할 수 없는 감정 속에 방황한다.

그러나 애착은 지나온 과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신뢰 받을 기회를 경험하고, 그 시간을 믿음으로 견뎌낸다면, 애착 유형은 변화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인 모드와 에버렛을 통해, 그 변화를 엿보자.

< 모드 — 그림 속에서 피어난 평온, 안정형 애착 >


모드는 겉보기엔 외로운 존재다. 걸을 수 없는 몸, 그녀를 반기지 않는 가족들. 그러나 붓을 들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느끼는 몰입과 평온. 아픔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은 어지럽지 않다.

댄스 클럽에서 홀로 춤추는 모드는 슬프지만, 그 속엔 단호한 감정전환의 의지가 있다. 그녀는 의미 있는 관계를, 생기 있는 삶을 갈망한다.

< 에버렛—거칠지만 부드러운 마음, 혼란형 애착 >

에버렛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감정이 벽에 부딪히면 분노로 폭발시키고, 손은 탁자를 내리친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결핍이, 그의 말과 행동을 두려움에 묶어두었다.

그렇기에 모드가 스스로 찾아왔을 때, 그는 거칠게 거절하며 스스로를 지킨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꺼림받고 놀림받는 모드를 향한 연민이 순간적으로 깃들기도 한다. 그래서 애버렛은 모드를 안전하게 데려다주기 위해 함꼐 길을 나섰지만, 애버렛의 선한 태도는 유지되지 않는다. 새신발이 불편하다는 모드의 말에 에버렛은 무심코 그녀의 발끝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이 굳어진다.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 듯, 그는 말없이 등을 돌려버린다. 누군가를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 그 감정이 자신에게 낯설고도 불쾌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모드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 안전 기지가 되어준다는 것 >

‘안전 기지’란 언제든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대상이다. 모드는 바로 그 존재가 되어주었다.

모드는 무뚝뚝하고 공격적인 에버렛을 비난하지 않고 포용해 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맛있나요, 오늘 힘들었나요, 물 올려놨는데 차 마실래요, 하며 식탁에 마주 앉아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렇게 노동에 지친 그에게 따뜻한 언어와 눈길로 하루의 수고를 위로해 준다.

에버렛에게는 그런 존재가 필요했다. 그의 마음을 물어봐 주고 그 마음에 머물러주며 담아주는...... 모드는 그림을 그리며 정서적 위안을 얻으며 살았지만, 에버렛은 마음을 북돋아 주는 위로처가 어디에도 없었다. 가슴이 텅 빈 삶이었다.

그녀는 애버렛의 조력자가 되어, 그의 자존감을 부드럽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집에 예쁜 그림들을 그려넣어 사람들을 모아들인다. 그렇게 모드는 외로웠던 그의 세계를 바꾸어놓는다.

< 신뢰와 사랑의 시간, 그리고 그 이후 >

모드의 일관된 보살핌은 에버렛에게 믿음과 편안함을 심어주었다. 함께 걷고, 서로 마주 보고, 따뜻한 음식과 차 대접의 작은 배려들은 그에게 큰 변화를 선사했다. 오래도록 마음을 담아주는 관계 속에서, 그는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모드가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여 그의 곁을 떠났지만, 에버렛은 그녀와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인간은 경험 속에서 성장하고,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배운다. 혼돈형 애착으로 관계를 시작했지만, 모드의 한결같은 온기는 그의 내면에 새로운 안정을 심었다. 그 기억은 영혼의 기둥이 되어, 그를 조용히 지탱할 것이다.

ㅡ 획득형 안정애착이란 ㅡ

획득형 안정 애착은 어린 시절 불안정한 애착을 겪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 비로소 자기 성찰과 타인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상처를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고통을 삶의 일부로 통합해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때 흔들리던 내면을 되돌아보며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가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조금씩 길러낸다. 마치 긴 겨울을 지나 스스로 빛을 찾아낸 꽃처럼, 이들의 애착은 후천적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그만큼 더 단단하고 깊다.불안정했던 애착의 시작은 더 이상 삶의 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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