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리학<세자매>

심적 고통을 잠재우기 위한 방어 / 방어기제

by 예심


서른을 넘겨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성경은 매 문장이 새로웠고, 교회 사람들은 천사처럼 느껴졌다.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마음 한켠이 갸웃해지는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도한 봉사에 자신을 던지거나, 끊임없이 연결을 요구하거나, 말수 없고 공허한 표정을 지닌 이들.

그들의 간증 속에서 드러난 가정사는 많은 걸 말해주었다. 처음엔 유별나 보였던 모습들이, 알고 보니 상처에서 비롯된 삶의 방식이었다. 심리치료를 받으며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곧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 또한 공허함을 달래려 무언가에 몰두했고, 연결을 좇으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세자매는, 내 안과 내 주변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 깊은 울림이었다.



<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감추다 >


세 자매는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와 방임하는 어머니로 인해 고통받았다. 그들의 부모는 기능적인 역할도, 정서적인 역할도 해내지 못했던, 전형적인 역기능 부모였다.

성인이 된 세 자매는 서로 다른 양상으로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간다. 다른 양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타고나는 기질이 다르고, 상처의 깊이와 환경이 다르며, 지식과 자원, 관계망도 제각각이므로.

그들은 깊이 배인 불안과 공허를 밀어내기 위해, 나름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몸부림친다. 그 안간힘은 안쓰럽고, 또 애틋하다.

< 방어기제란? >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심리적 장치를 마련한다. 방어기제는 바로 그런 자기 보호의 장치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내면의 지혜다.


방어기제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보상 (Compensation)

자신의 약점이나 열등감을 다른 영역에서의 성취로 메우려는 심리.
→ “나는 외모는 별로지만 공부는 잘해.”


2. 합리화 (Rationalization)

실패나 잘못을 논리적인 이유로 그럴듯하게 설명해 자기 정당화를 하는 방식.
→ “어차피 시험에 의미 없었어.”


3. 투사 (Projection)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
→ “쟤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사실은 자신이 상대를 싫어하고 있다)


4. 동일시 (Identification)

자신이 원하는 특성을 가진 인물이나 집단을 닮아가려는 심리.
→ “나는 그 배우처럼 말하고 행동해.”


5. 승화 (Sublimation)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충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식.
→ 공격성이 많은 사람이 운동선수가 됨.


6. 반동형성 (Reaction Formation)

실제 감정과 반대되는 태도나 행동으로 감정을 숨기는 방식.
→ 싫어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행동함.


7. 대치 (치환) (Displacement)

감정을 원래 대상이 아닌,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전가하는 것.
→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화풀이함.


8. 퇴행 (Regression)

심리적 고통 속에서 유아기적인 행동으로 되돌아가는 것.
→ 어른이 울거나, 아이처럼 떼를 씀.


9. 억압 (Repression)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무의식 속으로 눌러 버리는 것.
→ 학대받은 기억을 전혀 떠올리지 못함.


10. 억제 (Suppression)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을 의식적으로 밀어내는 것.
→ 일단은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중요한 발표가 있으니까.


11. 고립 (Isolation)

감정 없이 사실만 기억하거나 표현하는 것.
→ “그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감정 없는 말투로)


12. 백일몽 (Fantasy)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
→ 불행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화려한 상상에 몰입함.



< 희숙의 방어기제 — 억압 >

희숙(김선영)은 세 자매 중 첫째로, 가장 심한 신체적 학대를 겪었다. 그녀는 언제나 움츠러들어 있고, 말끝마다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하다, 너무 기다렸지. 가게가 너무 볼품없어서… 창피하다.”

희숙은 자주 고개를 숙인다.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어릴 적부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그녀는,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감정 자체를 무의식 속에 눌러두고 살아간다.

그 덕에 고통스러운 기억은 의식되지 않지만, 억압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감정을 끝없이 눌러 두면, 언젠가 그것은 무기력으로, 자해로, 질병으로, 심한 건망증으로 혹은 분노 등으로 되돌아온다. 희숙은 암이라는 병과 자해라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희숙이 무례하게 구는 남편에게 돈을 건넨 그날 밤 식물의 가지를 꺾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내던 장면은, 말하지 못한 감정이 어떻게 몸으로 말하는지를 보여준다.

< 미연의 방어기제 — 억제, 반동형성, 주지화, 치환 >


미연(문소리)은 양육자에게 직접적인 폭력은 겪지 않았지만, 정서적 방임과 두려움 속에 자랐다. 그녀는 어떤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신앙 안에서 ‘옳은 것’을 따르며 자신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참아낸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목사님께 생강차를 대접하며 웃고, 상대 여성에게도 따뜻하게 대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닌 반동형성이다. 감정이 무너질까 두려워 억지로 웃음을 짓는. 그것은 무너지려 하는 자아를 지탱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주지화가 있다. 감정을 이성으로 해석하려는 방어기제다. 미연은 마음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을 차단하고 거울 앞에서 파우더를 톡톡 두드리며 말한다.
“주님이 다 계획하신 거예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렇게 성경 교리로 감정을 덮어보려 하지만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차오르는 분노는, 가장 만만한 대상인 어린 딸에게 향한다. 딸에게 무릎 꿇고 기도하라며 문을 쾅 닫는 미연의 모습은, 억제된 감정이 치환되어 나타나는 고통의 현현이다.

누군가는 미연을 위선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겉과 속이 다른 삶. 다른이에게 화풀이하는 삶. 하지만 무너지려 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지켜내려 애쓰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 미옥의 방어기제 — 퇴행 >


막내 미옥(장윤주)은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난 쓰레기야”라고 읊조리며 큰언니에게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말끝마다 욕을 퍼부으며 폭발한다. 또한 그녀는 과자를 입에 달고 살기도 한다.

이는 발달 초기 시기의 퇴행으로, 정서적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자아가 유년기의 모습으로 도피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역시 변화의 여정을 걷는다. 아들이 자신을 부르지 않았던 학부모 상담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운함을 말하지 않고, 서툰 손길로 아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국은 맹물처럼 투명하고 반찬은 시커멓게 탔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앞으로 저녁은 우리 가족 다 같이 먹는 거야. 매일 아침밥도 챙겨줄 테니까 꼭 먹어.”

<“엄마”라 불릴 자격을, 스스로 묻는 사람들 >

정서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자라서 누군가를 보호하는 데 서툴 수밖에 없다.
희숙은 딸 앞에서 늘 눈치를 보고, 미연은 '이게 옳다'는 당위만을 되풀이할 뿐 아이의 감정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미옥은 아예 묻는다. 엄마란 도대체 무엇이냐고, 엄마는 뭘 해야 하느냐고. 엄마다운 모습을 본 적 없기에, 스스로 엄마가 되는 길 앞에서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가 되려 한다. 희숙은 사랑하는 딸의 선택이 염려되어 남자 앞에 무릎 꿇고, 미연은 딸에게 분노를 쏟은 뒤 눈물로 사과하며 꼭 안아준다. 미옥은 ‘부끄러운 엄마’였던 자신을 지워내고, 태워버린 반찬이라도 함께 먹자 말한다.

세 자매는 각자 내면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품고 있다. 그래서 자주 비틀거리지만, 그럼에도 자녀 앞에 서려 한다. 불완전하지만, 그들만의 진심으로 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흐르던 엔딩곡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의 멜로디와 가사에 마음이 젖었다. 이 세상 모든 세 자매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살아내줘서 고맙다.”
“그러니, 부디 용기를 잃지 말아달라.”


ㅡ 희숙(김선영)은 왜 자해 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을까 ㅡ


희숙의 자해는 그녀의 “말 없는 비명”이다.

세 자매 중 누구보다 조용한 인물이지만, 그 침묵의 깊이만큼 그녀는 극심한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살아낸다. 그녀가 자해로써 찾는 평온은 ‘진짜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불안에서 잠시 숨을 쉬게 해주는 마취제 같은 평화다.



― 자해 행위의 심리 ―


•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몸을 통해 표현하고 해소하려는 방식. 육체적 통증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덮는다. (신체화)

• 삶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감각을 쥐려는 시도. (통제감 회복)

• 무감각하고 공허한 내면 상태에서, 감정을 되살리기 위한 생존 전략. (감정 회복 시도)

• 자신을 향한 죄책감이나 자기비난을 신체적 고통으로 벌하며 견디려는 행위. (자기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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