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뜬금없이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시가 무언지 알 길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무엇을 쓸지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나한테 시를 쓸만한 감수성이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 무언가를 떠올려 보려 어린시절 추억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무수히 많은 감정의 옷을 입고 추억들이 속속 내게 도착했다. 차분히 하나씩 들여다보니 감정들이 데려온 파동들이 날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리저리 나부끼다가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 하나에 무심히 가서 박혀 버렸다.
없는 살림에 4남매 키우기가 녹록치 않았던 엄마가 사라졌던 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그 몇 시간. 작은 아파트 옥상에서 울던 모습. 혹시 엄마가 죽으면 어쩌나하며 불안했던 마음들. 엄마를 위로해 주기엔 모든 게 무서웠던 기억들.
기억은 감정을 불러왔고,그 감정 속에서 나는 세심히 단어들을 선별했다. 그런데 단어를 배열해 놓고 보니, 조악하기 그지 없는 시 한편이 완성되었다.
'시는 본래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꼬리를 물고 반감이 샘솟았다.'꼭 아름다워야만 할까?'
아무튼 시 한편에 어린 시절 불안했던 내가 온전히 들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니 결국 시 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단어의 조합 쯤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옥상
고독에 짓눌려 땅속으로 숨고픈 날
문득 떠오른 옥상
숨기엔 낮은 곳이 최고일진데
높다란 옥상은 무엇 하러
그 옛날
안팎으로 찾아도 없던 엄마
옥상 한 구석 꺼억 꺼억
울음을 토해 냈었지
높다란 난관도 없던 옥상 가장자리
그곳에 서면 배꼽이 주욱 당겨지는 느낌
그 어디쯤
두려움도 잊고 울던 뒷모습
위험하다 손을 뻗기도 무서워 덜덜 떨던 쫄보
어둠속 불빛들이 눈치 없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지독한 어둠에 매몰된 엄마
설움을 토해냈었지
낮은 곳은 숨바꼭질을 위한 곳
높은 곳은 이별을 위한 곳
그 날 다시 돌아온 엄마가 고마워
품에서 떠나지 않았지
어른이 된 쫄보
그때 그 옥상 가장자리에서
엄마 마음 한 조각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