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핵심은 글감찾기다. 누군가 말했다.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누구든 글감 찾는 고수가 된다고.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밖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는 나를 발견하곤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바닥에 떨어진 꽃이나 흩날리는 꽃잎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여행을 갔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남쪽지방이 고향이라 동백꽃은 그동안 지겨울만큼 봐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닥에 무심히 떨어진 동백꽃을 보니 완전히 새로워 보여서 신기했다. 꽃잎이 제각각 떨어지지 않고, 한 송이씩 툭 떨어진 모습이 깔끔하다 못해 쿨해보이기까지 해서 순간 반하고 말았다. 그렇게 걸 크러쉬 매력을 뽐내던 동백꽃은 묵직한 빨간색으로 바닥에 수를 놓은 채 다음 생을 준비중이었다.
김영랑 시인의 생가에는 곳곳에 모란이 활짝 피어 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라는 시를 학창시절에 참 열심히 암기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껏 모란을 본 적이 없었다. 핑크색이 도는 커다란 꽃들이 제법 탐스럽게 웃고 있는걸 보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여기저기 모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년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꽃만 찍지 않고, 꼭 프레임 속에 자신도 끼워넣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그들은 카메라를 보고 환하디 환하게 웃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에 꽃만 담는 나는 꽃처럼 환하게 웃지 않는구나. 그들은 꽃보다 더 환해지려 찰나지만 부단히 애쓰고 있구나.'
브런치에서 글을 읽다보면 기발한 글들을 종종 발견한다. 버스 손잡이를 보면서 삶이 흔들릴 때 잡을 손잡이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음식을 보며 연상되는 철학 이론을 설명해준다. 그런가하면 설거지를 하며 엄마의 노고를 깨달고, 동시에 가족들의 무심함에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런 글들을 읽으며 난 다시금 깨달았다. 무엇이든 글감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떨어진 동백꽃도, 사진 속 모란도, 무엇이든 글이 되어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