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있었다.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소리쳐 불러도 웬만해선 잘 들리지 않는 커다란 강이었다. 나룻배를 타고 가기도 먼 강이어서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는 날들이 많았다.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나의 결핍을 메우고자 전투적으로 노력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틈이 없어야 한다며 강도 들판도 만들지 않고, 온전히 아이와의 일체감을 느끼는데 에너지를 써버렸다. 1,2년 시간이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사라지고 아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부랴부랴 강 길을 하나 내었다. 들판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물고기들이 한 두마리 살기 시작했다. 들판엔 꽃들도 피어났다. 나는 나를 위한 완전한 시간을 가지며 종종 강과 들판에서 아이를 만났다.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행복해졌다.
"우리 참 대단한 인연인것 같지 않니? 엄마와 딸로 만난 인연 말이야." 어느 날 문득 들판에서 뛰어놀던 아이에게 내가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아. 엄마, 혹시 다음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땐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고, 엄마는 내 딸이 되면 좋겠어. 난 오래오래 살아서 사랑을 듬뿍 줄께." 너무 일찍 떠나버린 외할머니 이야기를 에둘러 하길래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우리는 매일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 어떤 선택을 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도 진다. 과정이 미숙하고, 실수투성이면 어떠랴, 궁극에는 그 과정 또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말 것인데.
며칠 전에 플래너를 작성하는 딸 아이를 보고 참 신기하다 싶었다. 빼곡히 공부 계획을 채워 넣길래 다 할 수 있으려나 내심 궁금했는데, 결국 아이는 스스로의 미션을 계획대로 모두 완수했다. 그리곤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이는 내 뒷모습을, 나는 아이 뒷모습을 보며 성장한다고. 아이와 나 사이에는 적당한 폭의 강과 뛰어 놀 들판이 꼭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