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엄마들은 과외와 학원 정보를 공유하느라 분주했다. 각 과목별로 유명한 선생님은 6개월 혹은 1년 전에 미리 대기를 걸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팀을 짜서 신청을 해야하는 경우에는 엄마들 간의 인맥으로 순조롭게 정리가 되어 그나마 시작이 빠른 경우라고 했다.
1학년 반 모임을 통해 안면을 익힌 엄마들은 만날 때마다 공부와 학원 이야기만 줄창 해댔다. 누가 똑똑한지, 누가 그림을 잘 그리는지, 누가 달리기를 잘하는지...의미없는 순위와 시기, 질투가 돌고 돌아 허공으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수업이 마치는 1시, 2시쯤이면 아이들 발걸음이 분주했다. 2-3개의 학원 순례를 무사히 마치려면 여유롭게 수다를 떨 시간도 없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우리 아이는 하교 후에 함께 놀 친구를 찾을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친구랑 놀고 싶어서 학원에 다닌다는 소리가 우스개소리가 아님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렇다고 친구따라 강남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매일 나랑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 책을 읽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4시 30분까지 마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라는 듯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내친김에 명예사서 봉사를 신청해서 도서관 정리도 했다. 덕분에 가끔씩 구석에 박혀 빛을 보지 못한 좋은 책을 찾는 행운도 얻었다. 몇시간 책을 읽다 집에 갈때면 우리가 빌릴수 있는 최대 권수를 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 가서도 할 일을 끝내놓고 얼른 책을 읽었다.
"책 좀 그만 읽고 쉬어. 아까 도서관에서 많이 읽었잖아." 내 말에 아이의 대답이 참 놀라웠다. "난 책 읽는 게 쉬는 건데?"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책읽기는 '쉼'이 아니었단걸. 물론 가끔 푹 빠져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책을 강박적으로 읽고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발전하고 싶어서,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 강박적으로 책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가 느끼는 재미와 '쉼'이란 것을 나는 책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1,2학년때 그렇게 꼬박 2년동안 우리는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만났다. 놀 친구가 없어서 시작된 도서관 생활이었지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나대로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서 좋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책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듯 읽던 시간이었다.
아이는 지금도 늘 책을 읽는다. 한 동안은 판타지 소설에 빠져 두꺼운 책을 하루 3권씩 읽더니, 이제 우주에 관한 책이 재미있다며 관련 책을 읽고 있다. 학교에서 빌리는 책으로는 부족해, 주말이 되면 집 근처 3개의 공공 도서관을 순회한다. 한 가득 책을 빌리고 돌아오는 길, 아이는 가슴이 팔랑팔랑 설레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