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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Dec 02. 2023

페르소나와의 이별

장애인 불복종 책을 읽고 나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데모를 통해 중증 장애인이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그래서 데모를 한다고 한평생 장애를 이유로 집 밖에 나설 수 없었고,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데모가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길거리에서 웬 고생이냐고 묻겠지만, 어떤 장애인들에게는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외출의 이유였다." p234


10개월 활동가로 생활하면서 내면의 갈등이 해결되는 책을 만났다. 변재원 작가의 <장애시민 불복종> 책이다 지체장애인 이면서 인권 활동가인 그는 정말 다양한 공부를 했고, 우여곡절에 인권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고민하고 있는 나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고, 현실의 나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다. 이 한 줄의 글을 적는 순간도 눈물이 난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무책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용기 내고 싶다. 지금 있는 나의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10개월 활동가의 생활을 하면서 내면의 물음표를 가지고 생활할 때는 정답을 찾느라 속앓이를 했다. 정답을 찾은 후 자신의 페르소나를 들여다보게 된 순간 놓아버리고 싶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어떤 감정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고 나니 이곳에 더 머물 수 있는 자신이 없어졌다. 


"거리에 휠체어를 주차한 채 서 있는 자신의 주변에서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이 저마다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사랑과 우정, 연대와 연민의 감정을 끊임없이 느낀다. 중증장애인의 데모는 단지 지배 권력과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로서도 존재한다. 데모 현장에서 집 밖의 하늘, 공기, 바람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중증장애인들은 거리를 걷고 구호를 외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독립심을 동시에 만끽한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민폐라는 이유로 자신이 뜻하는 길을 제대로 걸어볼 수 없었던 이들에게 데모는 세상에서 가장 해방적인 사회 참여의 방식이다." p235


'사회참여방식' 그렇다. 사회 참여 방식이었다. 나처럼 사회 참여에 소극적인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방식이다.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을 때 마음의 고통이 사라진다는 칼 구스타프융의 말처럼, 내가 고민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졌을 때 나의 페르소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헤세가 부인과 산책을 하면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아직도 싱싱하다는 말을 남긴 후 다음날 세상을 떠난이야기를 기억한다.  헤세의 집어든 부러진 가지는 활동가인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러진 가지를 보고 싱싱하다고 말한 후 세상을 떠난 헤세처럼, 활동가로서 나는 부러진 가지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해 출발한 헤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이후 그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벗고 새로운 길을 나서는 나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 여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10개월의 여정 속에서 방황한 나의 시간들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나의 방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함께 해 준 우리 반과 평생교육원 식구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시계가 아닌 마음의 시계로 살아가는 삶을 응원하며 나의 페르소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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