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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y 18. 2024

넌 충분해

이런 하루, 저런 하루

원래 대로라면 운동장도 돌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리포트도 쓰고 해야 하는데......

오후 내내 잠을 자버렸다.
덕분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잠으로 하루를 망쳐버린 자신에게 위로를 보내며 이 글을 적어 내려간다.

아침에 눈 떠보니  장정 한 명이 소파에서 자고 있다. 새벽에 아들이 왔나 보다.
누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

남편이 시장을 가자는 것이다. 아들이 왔으니 엄마가 맛있는 것을 해줘야 한다 나... 이런!  그렇지만 어차피 이번 주 야채 장을 봐야 해서 핑계 삼아 시장에 갔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보고 리포트도 쓴다고 했는데 그냥 도서관 근처에만 다녀왔다. 도서 연장만 하고 온 것이다. 인생,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요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다. 특히 나의 의지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이렇듯 눈앞의 하루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한 달 뒤, 1년 뒤, 10년 뒤의 일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아귀 탕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내가 끓인 것은 아니다. 남편의 실력이 일취월장이다. 콩나물과 미나리를 잔뜩 넣고 1 차는 지리로, 2 차는 매운탕으로 먹었다. 모두들 만족한 식사였다.


1차로 맵지 않는 탕으로 어머님이 드실 수 있게 하고 2 차는 해장이 필요한 아들을 위한 아빠의 배려가 보였다. 참 자상한 사람이다.


시어머니와 아들이 돌아간 뒤로 설거지는 나의 몫이다. 정리를 하고 치우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소파에 앉아서 깐 쉰다고 앉았는데 TV를 보다 잠이 든 모양이다.  일어나니  저녁 7시였다. 순간 짜증이 올라오면서 화가 났다.

누구에 대한 원망이나 탓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가 났다. 만약에 내가 담배를 피울 줄 알았다면 이런 순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까.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던 남편의 심정이 좀 이해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파트 베란다로 나갔다. 어둑해진 밖에서는 폭죽 소리가 났다. 어느 곳에서 축제가 있나 보다.  '5.18은 축제를 하는 날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시선은 사랑스러운 들에게 향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분에 물이라도 줘야겠단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올해는 막실리아가 꽃을 피우지 않는다. 화분이 작아 보인다. 옮겨심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막실리아 향기가 또 어마어마하다. 헤이즐넛 비슷한 향이 나는데 천리향과 함께 꽃이 피면 베란다는 향기 천국이 된다. 아직 개화 시기가  아닌 건지 올해는 피지 않을 것인지 이들의 속을 알 수는 없지만 꽃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마음이 좀 진정이 된다. 꽃이 주는 위로를 받았을까.
아침에 사 온 흑 토마토 1 개와 딸기 몇 알로 저녁을 대신하고  책상에 앉았다. 메모장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오늘 자야 할 수면 시간을 다 채웠으니 이제 할 일을 하면 될 것 같다. 시간을 거꾸로 살게 되는 건가.
 '잠을 먼저 자고 일상을 소화한다.'
건강을 생각하면 안 되겠지만 오늘 하루를 버린 나에게 주는 벌이라 고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또
'뭘 그렇게 까지 하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네 몸이 잠을 원했고 너에게 필요한 쉼을 준 거야.'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스스로에게 가혹하지 말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오늘 못한 운동은 내일 하면 되고, 포트는 아직 날짜 여유가 있으니 내일부터 하면 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비탄과 좌절 앞에서 절대 고개 숙이지 말자. 이들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긍정의 마음을 꼭 붙들고 놓지 말자.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넌 충분해!'

#백일백장 #책과 강연 #그레이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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