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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Jul 17. 2024

비 오는 날의 추억

1년 뒤의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국회대로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전동행진이 시작되었다.

마포대교를 경유해서 국회의사당 9호선 지하 농성장까지의 행진이다.

서울 지리를 모르니 거리가 얼마 큼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발 끝에 떨어지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다.

‘빗속에 행진이라니, 미친 거 아냐!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냐 고요!’ 마음속에서는 이런 마음이 핑퐁 거렸지만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휠체어와 우리들은 하나가 되어 마포대교를 건넌다. 점멸등으로 바뀐 신호등, 멈춰 선 버스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휠체어를 붙잡은 손위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흘러내린다.

' 나, 여기 왜 있는 걸까.'

모른 체 외면하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다.

그때  힘들다고 휠체어 담당을 바꿔 주셔서 혼자 대열을 따라 걷는다. 발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눈도 충혈되고 이대로 대열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화장실 핑계 대고 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학습자들도 함께 고생하고 있는데 혼자만 그러는 건 아니야!’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신발에서 나오는 뽀득, 뽀득 소리가 자꾸만 나를 쫓는다. 신발과 옷가지 모든 것이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창피하진 않았다.

9호선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야 한숨 돌린다.

휠체어 수에 비해 역사의 엘리베이터 수가 적어 우리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휠체어 행렬이 들어와서 우리는 다시 국회대로를 향해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절대로 할 수 없다.

휠체어와 함께 지하철을 타는 순간 4월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처럼 시끄러운 상황은 없었지만 여전히 우리를 보는 시선은 불편 해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라 더 적응이 될 법도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은 미로 속이다. 국회대로에 도착해 보니 낮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역사 안에 텐트가 쳐 있고 컵 밥을 나눠 주고 있었다.

‘내일까지 행사가 있다 보니 이분들은 여기서 이렇게 날을 밝히려나 보네. 다행이다. 우린 숙소가 있어서.’

이런 안도를 한 순간도 잠시, 저녁을 길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낮 동안 쏟아지던 빗줄기는 그쳤지만 거리의 모든 것들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거리의 식사는 서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밥이 먹히지 않았다. 빨리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비 오는 날에 잊지 못할 상황이다. 작년 이 맘 때쯤 생전 처음 참여했던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 권리입법, 예산쟁취 전국 결의대회, 권리중심공공 일자리 살리기> 거리 행진에 참여했었다.

다시 또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작년에 입사해서 신입이라고 다녔던 각종행사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상황이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서 부들부들 떨던 그날을 꼭 기억하자.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면 내년에는 내가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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