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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an 28. 2022

반전의 기회, ‘마지막 한마디’

면접관이 풀어놓는 '면접의 속살'-25

 면접 종료를 앞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에게 건네는 말은 무얼까? 아마 십중팔구는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일 것이다.  

  필자도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는 “이제 곧 면접이 끝납니다. 지금까지는 질문을 드렸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드릴게요. 면접실 문을 닫고 나갈 때, 풀어놓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 말씀이 있으신 분은 해보세요”라며 희망하는 지원자들에게 ‘마지막 한마디’의 기회를 준다.   


 면접관이 이미 마음속으로 평가를 끝냈을 시점이기 때문에 싱겁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일 테다.

 마지막 한마디를 면접을 끝내기 위한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하는 지원자들이 적잖다. 하지만 1분 1초가 아까운 면접에서 그저 형식적인 절차란 없다.



 인생이란 당장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갯길이다. 삶의 모든 전개가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는 항상 반전이 숨어있다. 흔치는 않지만 때론 마지막 한마디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에 따라 지금까지의 면접 결과를 한순간에 뒤집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합격을 부르는 ‘마지막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면접관 경험이 많아서인지 사람들로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기억에 남는 이유가 제각각 다르니 순서를 따질 일은 아니지만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한 지원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와 관련된 머릿속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면접 장면이 있다.


 면접이 거의 끝날 때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한 지원자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정말 서럽게 울어서 보는 사람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어쩔 수없이 다음 지원자에게 먼저 말할 시간을 주고 울음의 주인공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마음을 가다듬은 지원자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이 5번째 면접입니다. 그때마다 지원자는 어쩔 수 없이 ‘을 중의 을(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마치고 서글픈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면접을 보면서 처음으로 지원자가 을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야기를 내 일처럼 공감하며 들어주신  마음에 따스함을 느끼고 돌아갑니다오늘 따뜻하게 면접을 진행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면접의 결과를 떠나서 진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과 여운을 주었던 마지막 한마디로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오랜 면접관 경험을 통해 셀  없이 많은 마지막 한마디를 들었겠지만  지원자만큼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 마지막 한마디는 없었다.

 그 지원자는 어떻게 됐을까? 면접의 결과는 독자들이 예상하는 그대로다. 최종면접의 관문을 거뜬히 넘어서 지금은 직장 후배로 회사생활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많은 지원자들이 “면접에서 눈물을 보이면 틀림없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 지원자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평가와는 무관했다.

 눈물을 보였다고 해서 감점이 됐거나 거꾸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사실 마지막 한마디를 하기 전에 이미 안정적인 합격권이었다). 그러나 그 지원자의 마지막 말은 분명 짙은 울림과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이번에는 마지막 한마디로 기억에 각인된 또 다른 지원자의 얘기다. 1주일간 계속된 면접에 종지부를 찍는 최종일, 그것도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 지원자가 꺼낸 마지막 한마디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면접관님들! 정말 한 주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는 오늘 고된 하루를 보냈지만 매일매일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희 얘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귀 기울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모처럼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시간을 보내세요


 팽배한 긴장감이 휘도는 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면접 일정까지 헤아려서 마지막 한마디에 담는 센스와 순발력도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필자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곁눈질로 보니 다른 면접관들도 지원자의 마지막 한마디를 듣고는 어느새 평가표를 들여다보며 점수를 조정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마지막 한마디에 주어진 가점 덕분에  합격했다.

 애석하게도 1차 면접에서 만난 지원자여서 최종 합격 여부는 모르지만 인상 깊었던 마지막 한마디로 지금까지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다.



 흔히 생각하듯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면접관이 ‘마지막 한마디’ 시간을 주는 것은 아직 평가에 확신이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면접시간 내내 질문하고 대답을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어떻게 평가할지 결정을 못한 경우다. 무언가 더 지원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 지원자 스스로 얘기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까지 확실하게 면접관의 눈도장을 받지 못한 지원자에게는 반전을 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또는 ‘패자부활전’ 격이다. 무조건 기회를 붙잡는 게 당연지사다.



 그런데도 면접관이 시간을 내주겠다는데 “면접에서 할 말을 다 했다”며 굳이 사양하는 지원자가 있다. 이런 경우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합격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입사가 절실하지 않다” 등의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어렵게 주어진 패자부활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것이다. 마지막 한마디로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여서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지원자와 비교하면 패자부활전에서 또 승패가 갈린 셈이다.

“끝이라는 시점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은 탄탄한 스토리와 반전이 있는 흥미로운 베스트셀러가 된다”- 고도원 著,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中


 ‘마지막 한마디’는 이름 뜻 그대로 면접에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만약 무언가 할 말이 더 남았는데 면접관이 ‘마지막 한마디’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손을 들고서라도 부탁해보라.

  예를 들면 번쩍 손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해보는 것이다. “면접에 오기 전에 여러 편의 면접 후기를 찾아봤는데 하나같이 (이 회사 면접에서는 끝나기 전에) 마지막 한마디의 기회를 주신다고 해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대로 끝나면 돌아가는 길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혹시 마지막 한마디의 기회를 주실 수 없을까요?”


 비록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입사의 절실함만큼은 한번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은 틀렸다. 최소한 면접에서는 통하지 않는 얘기다. 면접에서 가만히 숨만 쉬고 앉아있으면 중간도 못 간다. 중간은 고사하고 바닥으로 추락하기 일쑤다.  


# 면접관의 심금을 울린 ‘마지막 한마디’ 

 취업준비생 철수가 어렵사리 최종면접을 보는 기회를 잡았다. 간절히 바랐던 자리였기에 철수영혼을 갈아 넣어 준비했다.

 하지만 아무 보람도 없이 너무 긴장한 탓에 면접시간 내내 버벅거렸다. 취업의 꿈이 물거품이 될 듯했던 그 순간 면접관이 지원자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조용히 입을 뗐다.


면접관: “이제 곧 면접이 끝날 텐데, 마지막으로 할 말 있나요?”

 면접관의 말에 철수 숨이  막히고 심장은 터질 듯 두근두근 쾅쾅 댔다. 오직  순간을 위해 준비해온 회심의 멘트를 날려야 하 때문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마지막 기회였다. 이윽고 면접관의 말이 끝나자 철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철수: 면접관님,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면접관: 그럼, 해 보세요!

철수: 네,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잡초’입니다.

면접관: (의아한 표정으로) 왜죠? 잡초라니요.

철수: 뽑아주세요!

 그 말에 면접관과 지원자들이 함께 빵 터졌고, 면접실을 나오는 철수의 등 뒤에 대고 면접관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입사원 연수 때 만나요!


 마지막 한마디로 깊은 인상을 남긴 지원자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포인트는 마지막 한마디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가 아니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리스에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 동상이 있다. 그런데 생김새가 아주 독특하다. 빨리 사라지기 위해 발에는 날개를 달고 누구든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앞머리는 숱이 많다.

 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다. 지나간 뒤에는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회는 붙잡을 수 있을 때 꼭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면접은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아니 꼭 보여주어야만 하는 자리다.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면접관이) 보여달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지막 한마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입사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피력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왜? 그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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