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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r 14. 2022

‘자기소개서 포비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자기소개서의 정석-3

 요즘 “수십 번 입사지원을 했지만 면접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는 취업준비생들의 애절한 호소가 넘쳐난다.

 실제 2021년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일자리 상황에 대한 청년세대 인식조사>에 따르면 청년 구직자들은 최근 1년간 8.4번의 입사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면접 횟수는 딸랑 2.0회로 나타났다. 입사는 고사하고 면접을 볼 기회조차 ‘가뭄에 콩 나듯’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자기소개서의 경쟁력이 떨어져서다. 기업에 '나'를 알리기 위해 '나'를 소재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자기소개서에 정작 '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서다.

 오죽하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스펙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소개서를 못써서 떨어진다”는 자조적인 말이 회자된다.


  도대체 얼마나 자기소개서가 부담스럽길래 그런 말까지 하는 걸까? 분명 어필할 거리가 있는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일 테다.

 취업을 희망하는 청춘 가운데 자기소개서를 써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취업을 위한 첫 관문인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를 요구하지 않는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오은 시인은 <이력서>라는 시에서 “밥을 먹고 쓰는 것/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말마따나 스스로의 힘으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처음 자신을 드러내는 청춘들이 내민 당찬 도전장이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다.



 이력서(입사지원서)는 지원 분야(직무), 주요 학력과 경력, 교육 및 자격(증), 대내외 활동, 외국어·컴퓨터 활용 능력, 수상 실적, 기타 병역사항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지원하는 기업에 제출하는 문서이다.


 이력서의 주된 내용이 지원자가 제공하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라면 자기소개서는 이력서만으로는 보여주기 힘든 나에 대한 지원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공통점은 취업, 즉 밥벌이를 위해 채용시장에서 ‘나’라는 상품을 광고한다는 마음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펼쳐가고 싶은 미래는 무엇인지" 스스로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밥벌이는 세상 누구에게나 힘겹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살아가려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먹고사는 문제이기에 아무리 아니꼽고 치사해도 자존심을 굽히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 고단한 밥벌이를 위해 쓰는 글이니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게 당연지사다.


 특히 정해진 양식에 맞추어 사실관계를 기록하는 이력서는 그렇다 쳐도 기업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의 에세이 형식인 자기소개서는 쓰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한 줄 써내려 갈 때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된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되면서 예전보다 자기소개서 비중이 훌쩍 높아진 데다 항목도 한층 까다로워져서다.


 요즘 취업과정에서 취업준비생들을 가장 헷갈리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단계가 자기소개서다. 오죽하면 ‘자기소개서 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포비아(Phobia)’는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취업준비생들의 약 80% 정도가 ‘자기소개서 포비아’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서류전형에 지원하고 나면 이제나저제나 합격자 발표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희망고문의 시간이 시작된다.

 혹시나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봐 하루 종일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화장실 갈 때조차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하지만 예의 그렇듯이 결국 희망고문으로 끝이 난다. “서류전형에 탈락하셨습니다. 제한된 채용인원으로 인해 귀하와 같은 능력 있는 인재를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보다 나은 직장에 합격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귀하의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는 탈락 통보 문자를 계속 받다 보면 어깨는 축 처져만 간다.


 탈락 통보 문자의 막강한 ‘자존감 어택’은 이별을 통보하면서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연인의 덕담 아닌 덕담만큼이나 충격도 크고 후유증도 오래간다.

 탈락을 확인할 때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낙첨복권처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그래도 스러져가는 자존감을 부여잡고 “도대체 이유가 무얼까?” “자기소개서에서 어떤 부분이 모자란 것일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보지만 도무지 뾰족한 답이 없다.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소개서에 쓸 내용을 정리하려고 애써봐도 머릿속에서만 빙빙 돌뿐이다.


 자기소개서 양식을 쳐다보고 있으면 과연 지원이나 할 수 있을지 막막해진다. 아무리 지나간 날들을 곱씹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기억은 없고 지금껏 살아온 삶이 보잘것없게만 느껴진다.

 “도대체 무얼 쓸지 모르겠다” 절로 푸념이 나온다. 애먼 컴퓨터 자판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해보지만 좀체 진도는 나가지 않는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마냥 반복한다.

 저 싸늘한 모니터 안에서 무언가 입력을 재촉하듯 계속 깜빡거리는 커서로부터 그저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 순간의 마음을 ‘커서의 공포’라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동안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쓸 말이 없을까?” 뼈저린 후회와 자책만 거듭하면서 끝 모를 무력감에 시달린다. 이런 무력감의 이면에는 해도 안된다는 좌절감과 어떻게 해도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뒤섞여 있다.  

 자기소개서를 마주하는 시간은 너무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참담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자기소개서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게 된다.



 취업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써본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걱정이 아니라 공포 수준이다. 그리고 사람은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기 마련이다.

 ‘자기소개서 포비아’의 늪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취업준비생들이 의지하는 곳이 취업학원이나 취업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자기소개서 첨삭 컨설팅이다. 로켓 첨삭으로 서류 합격을 보장한다는 광고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진다.


 심지어 ‘첨삭’(글의 내용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하여 고치는 일)을 넘어 아예 ‘대필’(代筆·남을 대신하여 글을 씀)을 맡기는 경우도 숱하다. 실제 인터넷 검색창에 ‘자기소개서 대필’을 입력하면 수많은 사이트들을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다.


 기본적인 신상 정보와 함께 희망하는 기업과 직무를 알려주면 성장과정부터 지원동기, 입사 후 포부까지 자기소개서의 모든 항목을 '맞춤형'으로 작성해 준다는 광고가 줄줄이 올라온다.

 (자기소개서) ‘초안’도 필요 없다는 걸 보면 누군가의 삶의 궤적에서 기업에 내세울 만한 특장점을 알아서 찾아준다는 것일 테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저 신박할 따름이다.



 이렇게 대필까지 성행할 정도로 청춘들에게 자기소개서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사실 나를 소개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 누구에게 하더라도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자기소개’라면 필자도 질색팔색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낯선 사람들과 모임에서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소문자 a형의 인간’인 필자에겐 가장 머쓱하고 뻘쭘한 순간이 자기소개 시간이다.


 차라리 궁금한 걸 물어봐주면 좋으련만 알아서 나를 소개해보라며 온통 시선이 쏠리다 보니 대략 난감이다.

 마치 어릴 적 ‘술래잡기’에서 술래를 놓쳐서 벌칙으로 주어지는 장기자랑을 보여주기 위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과연 무엇을 보여줄까?” 잔뜩 기대하며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과 마주쳤던 느낌이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좀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소개 울렁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글로 하는 자기소개는 더하다. 글은 말처럼 쉽게 써지지 않는다. 여러분도 취업하면 말보다 글이 어렵다는 것을 바로 실감하게 될 테. “직장생활은 보고서로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난다 말이 있다. 직장인은 보고서를  일이 많다.  보고서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 또한 많다.

 보고서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표현하기란 정말 막막한 일이다.

 그래서 보고서   써내려 가기가 쉽지 않다.  줄은커녕 커서만 깜빡거리는 공백의 모니터를 보면서 한숨만 푹푹 내쉬게 된다. 오죽하면 보고서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서점가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까.


 그만큼 글쓰기는 녹록한 일이 아니다. 말로도 어려운 자기소개이니 글로는 더욱 힘들다고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글을 쓰는 일이 제법 익숙하지만 아직도 필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버거운 글쓰기가 자기소개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출간할 때마다 짤막한 ‘저자 소개’ 부분을 채우느라 매번 진땀을 빼야 했다.


 객쩍은 고백이지만 마치 ‘나’라는 단어에 대해 혹은 ‘나다움’의 ‘사전적 정의’를 내려보라는 까다로운 숙제를 받은 느낌마저 든다. 세상에 ‘나’를 글로 소개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 대한 글이니 ‘일필휘지’(一筆揮之, 붓을 한번 휘둘러 줄기차게 써내려 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쉽게 써질 법도 한데 왜 그렇게까지 절절매는 것일까?

 민망하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을 수 있도록 ‘잘 써야 한다’는 욕심 탓이 크다.


 그러니 지원하는 기업에게 ‘나’를 처음으로 알리는 자기소개서라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고객인 기업에게 ‘나’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 보내는 ‘제품소개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돋보이고 빛나는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제껏 살아온 ‘있는 그대로의 나’, ‘진짜 나’가 아닌 실제의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보여주는 나’로 포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막히면 무작정 ‘멋진 나’로 화려하게 포장해줄 컨설팅이나 대필 전문가를 찾아 나서는 이유다.


 병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올바를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야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온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자기소개서 포비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소개서를 지원자의 스펙을 자랑하거나 글재주를 뽐내는 수단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줄, 한 칸 채우기가 버겁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시험에서 합격의 관건은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느냐에 달려있다.


  기업이 자기소개서에서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당연히 경쟁력 있는 자기소개서를 쓸 수 없다.

 기업이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이유는 지원자들의 스펙을 보자는 것이 아니다.

 학교·학점·어학점수·공모전 수상경력 등 웬만한 스펙은 자기소개서 없이도 이력서만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기소개서에서 드러나는 글솜씨도 기업의 관심사는 아니다. 기업에서 글 잘 쓰는 사람을 원한다면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졸업자, 혹은 등단 작가를 뽑으면 될 일이다.

 자기소개서는 시나 소설처럼 특별한 문장력이 있어야 가능한 글쓰기가 아니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깔끔하고 간결하게 정리할 정도의 문장력이면 충분하다.


  자기소개서는 기업이라는 고객에게 ‘나’라는 상품을 팔기 위한 제안서다. 이 제안서의 가치는 얼마나 할까? 국내 500대 기업의 평균 연봉은 7920만 원(2019년 기준)이다. 입사 후에 30년을 일한다고 가정해서 단순하게 계산하면 ‘23억 7600만 원’에 달한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는 인적 자본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사람을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물적) 자본에 빗대어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고 표현했다. 인적 자본의 개념에서 본다면 인재를 뽑는 ‘채용’도 기계를 사들이는 설비투자와 다름없는 ‘투자’다.


 그러니까 기업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소개서는 수십억 원짜리 상품제안서인 셈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억 원짜리 상품을 대충 사는 기업은 세상에 없다. 당신이라면 수십억 원짜리 상품제안서를 ‘글발’만으로 평가하겠는가?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기준으로 자기소개서를 평가할까? 기업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지원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왜 우리 회사와 지원한 직무를 원하는 것입니까?” 다른 하나는 “(조직·직무적합도 측면에서)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근거)는 무엇입니까?이다.


 한마디로 기업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지원자가 조직·직무적합도 측면에서 기업이 찾는 ‘적합한 인재’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업이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우리회사와 지원한 직무에 왜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지원자의 진솔한 생각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란 글쓰기의 성패는 글솜씨가 아니라 글감, 즉 ‘소재(素材)’에 달려 있다. 자기소개서의 소재란 지원한 회사와 직무에 꼭 맞는 인재임을 보여주는 (지금까지의) 경험,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생각, 그리고 (경험을 통해 얻은) 직간접적인 배움과 깨달음 등 내면의 가치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소재 자체가 별 볼일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글솜씨로 매끄럽게 자기소개서를 다듬어봐야 별 무 소용이다. 고치고 또 고쳐봐야 거기서 거기다.


 예컨대, 기업을 불문하고 자기소개서 단골 질문인 지원동기나 입사 후 포부는 제아무리 글솜씨가 빼어난 문장가라도 술술 써내려 갈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지원하는 기업과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성장과정이나 성격의 장단점도 뽑히는 자기소개서가 되려면 결국 지원한 회사와 직무와 잘 연결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대필작가가 그 많은 기업과 직무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한마디로 자기소개서는 ‘글발’이 안 통한다. 아무리 유능한 대필작가의 손을 빌려도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얘기다.


 자기소개서에서 중요한 건 ‘글발’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지원한 기업과 직무에) 꼭 필요한 인재인지"를 제대로 드러내는 가다.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분명하면 비록 투박한 문장이라도 훌륭한 자기소개서가 된다.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나 수식어도 거기에는 못 당한다. 자기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빼어난 글짓기 기술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대필을 맡기면 유려한 문장의 자기소개서가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표현은 멋지고 매끄러울지 모르지만 되레 화려한 미사여구에 가려져서 정작 중요한 ‘나’라는 알맹이는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재료 고유의 맛은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조미료 맛만 나는 요리와 다름없다.


 하지만 요즘은 차별화의 시대다. 더구나 경쟁이 치열한 취업시장에서는 타인과의 차별성이 경쟁력이고 남다름이 최고의 장점이다.

 자기소개서도 눈길을 끌만한 차별화, 바꿔 말하면 ‘남달라야’ 뽑힐 수 있다. 그러니 미사여구로만 뒤덮인 밋밋하고 개성 없는 자기소개서로 합격은 언감생심이다.


나만의 매력이 경쟁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신형 엔진 박지성과 같은 인재, 아무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들은 자기소개의 첫 문장이다.

  당시 필자는 증권사 임원으로 하루 쉰 명 내외 지원자를 평가하는 입장이었다. 다섯에서 여섯 명씩 편성돼 들어오는 이른바 조별 면접에서 자기 순서가 돌아오자 어떤 지원자가 스스로 ‘참신한 인재’ 임을 씩씩하게 외치는 순간이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창 실력을 발휘하던 박지성 선수까지 등장시켰으니 그야말로 표현의 참신함에 내심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감동은 불과 두어 시간 만에 무참히 깨졌다. 다음 조에서도 맨체스터의 신형 엔진이 등장하고 두 시간 후에 또 한 명. 오후까지 진행한 여덟 개 면접 조에서 자칭 박지성급의 신형 엔진이 네다섯 명쯤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형 엔진이란 표현에 신물 난 것은 필자만이 아닌가 보다.

 다음날 속개된 면접에서 옆자리 임원은 아예 지원자들에게 ‘자기소개할 때 맨체스터 얘기는 빼라’는 황당한 주문까지 했다.

 거짓말이나 지나친 과장은 물론 금물이지만 남들과 비슷한 답안도 결코 무기가 되지 못한다.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도 있지 않은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출처: 매일경제 2021.7.3


 무엇보다 대필로는 내가 가진 입사에 대한 진정성이나 절실함을 전달하기 힘들다. 대필작가에게 그런 마음가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회사(직무)를 절실하게 원하는가?" "나는 과연  이 회사(직무)에 적합한 인재인가?"그렇다면 그를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본인조차 하지 않는 고민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것 같은가? 그러니 대필로 완성하는 자기소개서는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까? 해답은 이미 자기소개서라는 이름에 나와 있다. 세상 모든 이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소개서는 이름처럼 ‘자기를 소개하는 글’이다. 이름 뜻 그대로 자기가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된다. 내가 이제껏 살아온 발자취를 진솔하고 꾸밈없이 기록한 글, 그것이 바로 자기소개서의 본질이다.

 그래야 ‘진짜 나’를 자기소개서에서 명징하게 드러내고 다른 지원자들과의 확실한 차별화가 가능해진다.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화려한 수사나 기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 그 자체다.


 인간은 다양성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다. 70억 세계 인구, 5천만 한국인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소개서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고, 오롯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쳐내면 자연스레 누구와도 다른 존재가 된다.


  ‘나’는 이미 유일무이한 존재이므로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면 자기소개서를 읽는 사람은 당연히 개성 있고 차별화된 존재로 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굳이 개성을 부여하고, 튀어 보이려고 용쓰지 않아도 된다. 특별하게 보이는 누군가를 닮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한마디로 자기소개서에서 포장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많은 청춘들이 아무런 포장 없이 ‘진짜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날듯이 두려워한다. 어느 누구도 나 대신 삶을 살지 않았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기소개서는 누가 써야 할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를 소개하는 자기소개서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꼽으라면 바로 자신이다.


 그러니 자기소개서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 이유가 없다. 화려한 미사여구로만 번듯하게 꾸며진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는 ‘자소설’이 아니라 이름 속뜻처럼 진짜 나를 알려주는 ‘찐 자기소개서’를 쓰면 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당신보다 더 나은 당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애드 시런(영국 가수) 


 사실 취업준비생들이 ‘공포’라고 표현할 만큼 자기소개서 작성에 부담을 갖는 이유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탓하기에 바쁠 뿐 정작 자기소개서 작성에 필요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자기소개서에서 (기업 및 직무에 대한)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 지원직무와 관련된 역량·경험 등을 작성하기 가장 까다로운 항목이라고 하소연하면서도 정작 기업과 직무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는다. 또 “내가 왜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지, 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과연 그 회사와 그 일이 내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은 않는다. 


채용설명회에 참석한 인사담당자, 취업준비생 설명에 가슴 친 사연

 채용설명회나 채용박람회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무엇을 써야 하나요?” 또는 “자기소개서에서 어떤 부분을 제일 많이 보시나요?”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좀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취업선호도 1순위 기업인 기아자동차 인사담당자는 거꾸로 되묻는다. “지원하는 회사의 인재상이 무엇인지, 또는 본인이 그 인재상에 맞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입사지원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위 스펙이 아니라 지원하고자 하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인가 그리고 그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인가 하는 점이라는 뜻이다. -출처: 잡스엔 著, <읽다 보면 취업되는 신기한 책> 48쪽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하지 못하면 취업의 꿈은 ‘언감생심’ 일뿐이다. 기업은 ‘취업준비’가 아닌 ‘일할 준비’를 마친 지원자를 뽑기 때문이다. “일단 합격만 하고 보자”는 생각을 가진 지원자라면 똑 부러지는 지원동기나 입사 후 펼쳐질 직장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 리 없다. 주변을 보면 취업준비는 열심히 하면서도 취업 후에 펼쳐질 직장생활에는 관심을 접은 청춘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취업은 끝이자 시작이다. 지방대 나와서 취직하기 되게 힘들었거든. 근데 합격하고 입사하고 보니까 성공이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명대사다. 곱씹을수록 가슴에 와닿는다. 과연 그렇다. 입사는 끝이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는 출발점이다.



 입사는 취업준비의 끝이지만 직장생활의 시작이기도 하다. 취업을 하면 취업준비생으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직장 새내기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아무리 신입사원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치로 뽑는다지만 입사한 다음에도 언제까지나 가능성을 가진 ‘미완의 대기(大器)’로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는 누구나 성과를 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입사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그래서 기업은 일할 수 있는 역량과 마음의 준비까지 갖춘 인재를 원한다. '취업 준비'가 아니라 '일할 준비'를 끝낸 지원자를 뽑는다. 지원동기나 입사 후 포부가 자기소개서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취업준비생들이 극한의 공포, 자기소개서 포비아에 빠지는 이유는 지원한 회사를 모르고 직무를 모르고,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전에 기업과 직무에 대한 철저한 공부,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하는 회사(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적합한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어떤 역량이나 강점을 갖고 있는가” “앞의 2가지 질문이 매끄럽게 연결되는가?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확신에 찬 답이 나온다면 자기소개서의 어떤 질문(항목)에도 막힘없이 써 내려갈 수 있다. 읽는 사람에게 입사를 위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고, 진심이 묻어나고 열정이 전해지는 매력적인 자기소개서가 탄생한다.

 질문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결국 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더 이상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순간 ‘자기소개서 포비아’는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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