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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r 25. 2022

‘자소설’과 ‘역지사지(易地思之)’

자기소개서의 정석-5

 요즘 ‘자소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소설(小說)이라는 말을 인 이유는 그 안에 사실이 아닌 허구, 즉 진실이 아닌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화려한 수식어를 사용해서 내용을 부풀리고 멋진 표현과 문장을 이곳저곳에서 베껴서 짜깁기한 자기소개서들이 넘쳐나다 보니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 소설처럼 꾸며 쓴 자기소개서)이라는 단어가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버젓이 등재될 정도다. 바야흐로 자소설 전성시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는 취업준비생들의 푸념에 기업도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자소설’이란 말이 나올 만큼 자신을 최대한 돋보이게 포장해 놓은 자기소개서들 속에서 진짜 인재를 가려 뽑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다.


 필자가 어린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군것질거리는 ‘뻥튀기 과자’였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뻥튀기 과자의 매력은 고사리 손으로 들고 간 옥수수나 쌀을 몇 배는 튀겨서 내놓는 것이었다. 

 뻥튀기 아저씨가 ‘뻥이요’ 하고 걸쭉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치면 잠시 후에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뻥튀기 기계에서 튀밥이 산처럼 쏟아졌다.

 멍석 위로 흘러나온 것만 주워도 한 주먹이 넘칠 정도였다. 그래서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옥수수나 쌀이 몇 배는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뻥튀기 과자의 인기는 대단했다.



 뜬금없이 왜 갑자기 뻥튀기 타령이냐면 잔뜩 부풀려진 자기소개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요즘 취업준비생 중에서도 마치 뻥튀기처럼 자신을 부풀리는 데만 골몰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채용의 첫 단계인 서류전형에서 수북하게 쌓인 자기소개서들을 보면 머리가 아파지고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다. 하나같이 “나 잘났으니 뽑아달라!”라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필자도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를 읽다 보면 취업의 어려움을 실감하는 한편 새삼 회사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경쟁률도 엄청난 데다 지원자들의 ‘스펙’이 정말 화려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학회나 동아리에서 회장·부회장, 하다못해 총무 등 감투를 써 본 경험이 있다. 학창 시절 반장이나 학생회 임원을 도맡아 하면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도 공통점이다. 공모전이나 경진대회 입상자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화려한 스펙을 갖춘 지원자들이 입을 맞춘 듯 하나같이 역량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격까지 끝내준다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이런 대단한 인재들이 들어오고 싶은 직장이라면 필자에게는 ‘오감타’(지나치게 분에 넘치는 상황이나 물건)가 분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지원자들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항목에 맞추어 합격에 유리할 것 같은 자랑거리들을 무작정 늘어놓기 바쁘다. ‘서류 광탈’을 피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들만큼은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서 나의 자랑거리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뽑히고 싶은 지원자의 관심사이지 뽑는 입장인 기업의 관심사는 아니다.

 물론 지원하는 입장에서야 “잘난 인재이니! 나를 뽑아달라”라고 주장해야 하는 자기소개서의 본래 목적에 비춰보면 앞뒤 재지 말고 무조건 자랑거리를 내세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읽는 사람을 ‘설득’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나를 뽑도록 설득하는 것이 자기소개서 본연의 목적이다. 당연히 자기소개서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가 아니다. 혹은 무엇을 썼는가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는 가다.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다. 자기소개서는 독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다음의 자기소개서는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다. 무얼까? 독자 여러분도 함께 읽으면서 자기소개서 본래의 용도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을 찾아보자.


"경제학과 경영학에 뛰어난 통찰력을 갖춘 준비된 은행원"   

Q: 00 은행에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인이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역량은 무엇입니까? 

 제가 첫 손에 꼽고 싶은 역량은 전공 수업 및 독서를 통해 다진 경제학, 경영학 지식과 해당 분야에 대한 적합성입니다. 고등학교 때 전국 규모의 경시대회인 ‘KDI 경제한마당’에 참가해 동상을 타는 과정에서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같은 상경계열인 경영학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무와 회계에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기업가치평가’‘파생상품론’ 등의 심화 전공 수업들을 수강하면서 제 적성과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고, 실제 4.19/4,5의 전공 평점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경제학과 경영학을 넘나들며 쌓은 뛰어난 통찰력과 그를 통한 성취의 경험은 향후 00 은행에서 자신감 있게 업무에 임하는 탄탄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지원자가 자랑하듯 4,5만 점에 4.19점이라는 학점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학창 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은 것도 분명 자랑할만하다. 하지만 학점이 ‘성실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평가기준은 될지 모르지만 지원한 직무에서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잣대일 수는 없다.

 지식은 성과를 내기 위한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과는 지식 말고도 여러 능력의 총합이다. 쉽게 말해 기업은 학점이 좋다고 해서 또 장학생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지원자가 입사 후에 일 잘할 인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학력이나 학교 성적 등 소위 ‘스펙’이 이 정작 입사 후 성과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숱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듯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배하다시피 학점 자랑으로만 일관한 자기소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학점은 이미 이력서(입사지원서)에 언급했으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다시 ‘학점 자랑’인 셈이다. 자연스레 “학점 말고는 내세울 만한 특별한 강점이 없는 지원자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다. 안타깝게도 자기소개서의 주인공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직무(job), 즉 ‘회사에서 맡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역량(Skill)은 크게 하드 스킬(Hard Skill)과 소프트 스킬(Soft Skill)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하드 스킬(Hard Skill)은 학위·자격증·외국어 능력 등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요건(technical requirement)을 말한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스펙’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하드 스킬은 정량화(定量化), 다시 말해 숫자로 표시하기 용이하다. 그래서 기업이 역량의 보유 여부나 (역량) 수준을 손쉽게 평가할 수 있다. 또 하드 스킬은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그럼 소프트 스킬(Soft Skill)은 무얼까? 사람의 인성·소통능력·리더십·문제 해결 능력 등 눈에 보이는 기술적 요건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인 개념의 역량을 가리키는 무형(無形)의 혹은 정서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하드 스킬과 달리 정량화나 평가가 힘들다. 하지만 요즘을 ‘소프트 스킬의 시대’라 할 만큼 기업들 사이에서 조직에 대한 적응이나 장기적인 성과 창출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인재 채용에 대한 두 가지 원칙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 X 초창기에 모든 채용 면접에 참석했고, 테슬라 신규 공장에 2000여 명 직원을 뽑을 때도 각 지원자에 대한 보고서를 일일이 검토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과 함께 일할 직원을 엄격히 선발했다. 그렇다고 일론 머스크가 최고의 학벌과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떤 문제와 씨름했고, 어떻게 해결했나?이다. 그의 회사들은 채용할 때 학위를 요구하기 않는다. 실전 능력을 더 중요시한다. 2020년 2월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을 위한 AI 개발자를 뽑을 때 고졸 출신도 괜찮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대신 AI를 얼마나 깊게 이해하는지 중점적으로 보겠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하드 스킬보다는 소프트 스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하드 스킬과 달리 소프트 스킬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능력, 창의적 사고, 감정조절 능력 등을 말한다-출처: 충청투데이 2021.1.26


 채용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업은 상대적으로 정량화가 쉬운 하드 스킬, 즉 스펙은 이력서(입사 지원서), 정량화하기 어려운 소프트 스킬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파악한다.

 구체적으로 소프트 스킬과 관련된 경험 여부나 깊이를 물어본다. 소프트 스킬은 경험이 쌓이면서 습득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 관련 질문’이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앞에서 이력서(입사지원서)는 스펙 등 지원자가 제공하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자기소개서는 이력서만으로는 보여주기 힘든 나에 대한 지원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앞에서 예시로 든 학점 자랑으로 도배한 자기소개서처럼 이미 이력서에서 언급한 내용을 또다시 미주알고주알 풀어놓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기업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자기소개서에서 다시 듣고 싶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따로 요구하는 의미가 무얼까?


 만약 글로벌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 기업이 지원자의 어학 능력이 궁금하다면 이력서에 기재된 어학성적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정작 궁금한 글로벌 직무 담당자에게 필수적인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개방성이나 친화력을 보유했는가는 어학성적 만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통해 관련된 경험에 대해 질문한다. 예를 들면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인재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학창 시절) 경험을 기술하시오”식이다.


취업 시, 소프트 스킬 중요 … 기업 “업무 성과 영향 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431개사를 대상으로 ‘채용 시 소프트 스킬 평가 필요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87.7%의 기업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소프트 스킬을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는 업무 성과에 영향이 커서(45%, 복수응답)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전공, 자격증 등 하드 스킬뿐 아니라 정서적 능력에 해당하는 ‘소프트 스킬’도 성공적인 업무 진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73%는 평소 소프트 스킬 평가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소프트 스킬 평가가 어려운 이유는 ‘실제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워서’(76.1%,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출처 : CBC뉴스 2020.7.2


 이런 경우 지원자는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까? 당연히 어학성적이라는 하드 스킬이 아니라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소프트 스킬을 보여줄 수 있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말하자면 어학연수 기간 중에 본격적인 이문화 체험이나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나 접시 닦기 등 유학생들이 흔히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길거리 댄스 홍보 아르바이트에 도전한 경험을 소개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멘트로 마무리한다면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재’라는 주장의 설득력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실제 지원자의 사례(경험)로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생생한 경험담만큼 확실한 근거는 없다. 즉 어학성적이라는 하드 스킬이 아니라 개방성과 친화력이라는 소프트 스킬을 어필해야 자기소개서의 본래 목적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지원한 기업이나 직무와 관련 없는 경험(경력)을 잔뜩 나열하다가는 돋보이기는커녕 묻지마 지원이나 개념 없는 지원자라는 인상으로 비쳐서 서류(전형) 탈락의 빌미가 되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자격증을 여러 개 보유한 지원자가 공모전에서 몇 번이나 수상한 경력이 있다고 하자.

 게다가 오랫동안 학회와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도 전공과목에서 올 A에다 장학금까지 받았다. 얼핏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스펙이자 경험으로 들린다.


 그런데 경험들이 하나같이 ‘광고’와 관련된 것이고, 정작 입사 지원은 광고회사가 아닌 증권회사에 했다면 어떨까? 증권회사 입장에서는 지원자의 선택이 어떻게 비칠까?

  ‘광고인’이 아닌 ‘증권맨’으로 진로를 급변경한 지원자의 선택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 않을까? 또 항공사 승무원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 금융 관련 자격증이 아무리 많다고 자랑해본들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과연 지원자가 내세우는 (지원한 회사나 직무와 관련 없는) 자랑거리들이 서류전형 평가위원이나 면접관들이 정작 궁금해하는 “왜 우리회사(직무)에 지원한 것입니까?”“ 왜 우리가 당신을 뽑아야 합니까?”에 대한 답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우수한 인재’가 아니라 ‘적합한 인재’를 뽑는 요즘의 채용 트렌드에서 자기소개서를 빼곡하게 채운 자랑거리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자랑거리들이 지원한 기업이나 채용하는 직무에 어떤 의미(가치)가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기업의 공감을 끌어내고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빛나는 경험이라도 지원한 기업이나 직무와 관련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되려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싶어도 해당 기업이나 직무와 관련성이 낮은 경험은 과감히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경우에 따라 어떤 경험은 밝히지 않느니만 못하게 서류전형 탈락이나 면접에서 집중적인 질문 공세를 당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지원자의 조직·직무적합도를 판단하는 데 경험이 가장 확실한 기준으로 자리 잡아서다.


  기업은 제아무리 화려해도 일관성 없는 스펙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지원자가 아니라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 진심인 지원자를 바라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사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지원한 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과 경험을 꾸준히 쌓아온 지원자를 바랄 터이다. 당연히 자기소개서에서 ‘모든 회사’가 아니라 꼭 집어서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 관련된 내용을 기대하지 않을까?

 자랑거리들은 가득하지만 정작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 관련된 내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볼 때면 떠오르는 우화가 하나 있다.


“동물들의 자격 심사대회가 열렸다. 거위가 제일 먼저 나섰다. 심사위원이 공적사항을 물었다. 거위는 자신의 8대 조가 트로이 전쟁 때 성을 넘어오는 적병을 맨 처음 발견했노라고 했다.

 ‘그건 자네 8대조의 이야기이고, 자네의 공적은 무언가?‘예, 제가 바로 그 8대조 할아버지의 8대손이지요’ ‘ 글쎄, 트로이 전쟁은 그렇다 하고 자네의 공적을 묻지 않나’ ‘ 참!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제가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그 유명한 분의 8대 직손이라니까요”


 김소운 시인이 <목근통신>에서 인용한 이솝우화의 한 장면이다. 우화(寓話)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동물들이 빚어내는 유머를 통해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말한다.

 이 우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소통의 본질이다. 언뜻 보면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대화’가 아니라 ‘거위의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소통은 없다. 대화가 아니라 거위의 일방통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에게 불평을 늘어놓지만 정작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귀를 닫은 채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쪽은 거위다.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본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아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상대의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우화 속 거위도 먼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라면서 말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심사위원이 무엇을 말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8대조 할아버지의 직손임을 부연해서 설명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다.


 어쩌면 자기소개서에서 취업준비생들의 자랑거리들이 독백이 되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맥락 없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거위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맥락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맥락은 대화에서 상대방의 공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맥락 없는 이야기로 상대방과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기는 어렵다. 맥락 또는 연결고리가 빠지면 이야기가 한 줄에 꿰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골자 없이 이것저것 주워섬기는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지고 공감은 물 건너간다.


 자랑거리가 지원한 기업이나 직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는 자기소개서도 맥락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동안 'OO사용설명서'라는 책 제목이 유행했었다.

 예컨대, 인생·시간 등에 관한 사용설명서다. 모두 너무 친숙해서 잘 알 것 같지만 막상 정확한 사용방법은 놓치기 쉬운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자기소개서도 사용설명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자랑 대잔치, 특히 ‘스펙’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을 쓰게 되는 이유다. 자랑거리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바라는 대로 빛나는 자랑거리가 되려면 지원한 회사와 직무에 적합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지원자가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나를 진정으로 돋보이게 만들려면 ‘적합한 인재’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도록 자기소개서에서 지원한 기업·직무와의 분명한 연결고리가 드러나야 한다.

 실제 오랫동안 우리회사와 지원하는 직무를 희망하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는 분명 다르다. 몸으로 부딪쳐가며 알아보고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소개서는 당연히 뽑힌다. 우리회사와 지원하는 직무에 진심인 지원자를 뽑아 놓으면 더욱 회사에 고마움을 느끼고 붙박이로 눌러앉아 맡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충성심(Loyalty) 강한 직원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기업은 숱한 경험을 통해 이미 깨우쳤기 때문이다.


  거꾸로 지원한 회사나 직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자기 자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제아무리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여도 지원한 기업이나 직무와 관련되어 있지 않으면 기업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맥락 혹은 연결고리가 빠진 탓에 기업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가질만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은 ‘우수한 인재’(Good People) 일지 몰라도 지원한 기업과 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적합한 인재’(Right People)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기업은 ‘우수한 인재’가 아니라 ‘적합한 인재’를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훌륭한 스펙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우수한 인재이면서도 우리회사와 직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필자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스펙’이 아니라 지원하는 회사와 직무에 적합한 소프트 스킬을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경험’이야말로 여러분이 자기소개서에서 자랑해야 할 ‘진짜 찐 스펙’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본래 용도에 맞게끔 쓰여야 제대로 효과가 나는 법이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역지사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역지사지는 “易 바꿀 역, 地 땅 지, 思 생각할 사, 之 갈지” 상대방과 처지나 형편을 바꾸어 생각하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의 입장이 되어 속을 헤아려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취업준비생이 가져야 할 역지사지의 마인드란 기업의 입장에서 ‘채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일전에 SBS 스페셜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취준진담> 편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취업의 문턱이 너무 높다고 하소연하는 취업준비생들과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푸념하는 중소기업(대표)들이 서로 역할을 바꿔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아낸 덕분이다.



 ‘역지사지’라는 이름 그대로 방송에서 취업준비생이 면접관이 되고, 머리 희끗희끗한 기업의 대표들이 젊은 면접관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정반대의 입장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 역지사지를 통해 서로가 푸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서로가 상대의 입장이 돼보면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에서 기획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면접 프로젝트였다.

 역지사지! 그야말로 절묘한 작명 센스가 아닌가? 면접을 다룬 프로그램에 이만큼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 뽑는 입장이든 뽑히고 싶은 입장이든 간에 역지사지의 자세로 접근해야만 면접에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 간에도 마음 맞기가 쉽지 않은데 생판 남인 기업과 취업준비생의 마음이 일치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태도는 기업과 취업준비생 모두에게 필요하다. 한 발짝씩 물러나서 서로가 맞춰주면 좋겠지만 채용시장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취업준비생이 아니라 기업이다.


 채용시장은 아직까지 수요자(구직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기업) 중심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원자를 선택하고, 지원자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다.

 취업은 결국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맞출 것인가? 안타깝지만 어쩌랴. 아쉬운 쪽인 취업준비생이 맞출 수밖에 없다.


 서류전형·면접 등 채용의 각 단계마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나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도록 만들어서 나를 선택하게 해야만 그토록 바라는 취업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공감(共感)’은 글자 그대로 나의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인드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공감은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눈과 귀와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즉 공감의 주체는 지원자가 아닌 ‘기업’이다. 기업의 입장으로 ‘빙의’(憑依·다른 것에 몸이나 마음을 기댐)해서 '취업'이 아닌 '채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의 입장이라면 "(우리회사의 문을 두드리는) '나'에게 무엇이 왜 궁금할까?” “내게 확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기업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취업은 구직자의 관점, 채용은 기업의 관점이다. 즉 '뽑히고 싶은 사람'과 ‘뽑는 사람’이라는 입장의 차이다. 취업준비생이 그 관점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기업과의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기업이 나를 몰라준다”는 안타까운 독백만 계속하게 되고 취업의 꿈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관점을 바꿔야만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혹은 문제를 풀고자 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존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똑같은 방법으로 풀려고 들면 늘 같은 결과만 나온다. 새로운 결과를 원한다면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은 ‘관점의 전환’이다. 시선을 늘 같은 곳에만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일을 비슷한 시선은 늘 같은 방법으로 계속하면서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아인슈타인


 관점을 바꾸면 우리의 삶에 극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미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관점은 가만히 앉아있으면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상황을 직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문제의식이 바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현실을 바꾸는 출발점이다. 자기만의 좁은 세계,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갇혀 있던 틀에서 깨어나 취업준비생이 아닌 기업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순간 취업이라는 답답한 현실도 전혀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공취업에 필요한 ‘역지사지의 마인드’다. 역지사지는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보다”의 영어 표현은 “to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보다”는 곧 다른 사람의 처지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본다는 의미다.



‘뽑히고 싶은 지원자’인 나의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뽑는 사람’인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지사지의 마인드를 자기소개서에서 어떻게 표현할까? 그 답은 바로 다음 칼럼의 주제인 '맞춤형 자기소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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