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턴을 위한 스펙이 필요했어요
누구보다도 대학교를 초등학교처럼 다니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막상 막학년이 되고 보니 취업에 대한 압박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사회에 내던져질 자신은 없고, 과연 나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실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신입보다는 인턴에 목매며 서류를 넣곤 했다. 그리고 인턴은 금턴이라는 것을 실감.. 대기업 인턴은 정량적 스펙 없이는 서류 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영화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영화사 신입/인턴에 지원했다. 다행히 영화 비평 활동, 블로그를 비롯한 SNS 활동, 각종 영화 대외활동 덕분인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도 면접 기회가 쏠쏠하게 찾아왔다. 정말 여기는 합격 각이다라는 느낌이 나는 배급사도 있었는데, 마케팅 제안서까지 기깔나게 만들었지만 영화 관련 아카데미를 수료하지 않았다는 얼척없는 이유로 탈락했다.(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냥 이렇게 써 봤다) 그렇게 최종 탈락의 고배를 몇 번 마시고 암울한 막학기가 시작됐다. 복수전공을 두 번 바꾸는 바람에 빵꾸난 학점을 매우느라 초과학기를 보내야 했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코로나19가 만든 최고의 시스템인 실시간 강의 속에서 강의는 안 듣고 매일같이 자소서 수정, 이력서 제출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운 좋게 종합홍보대행사 두 곳에 서류 합격. 전공이지만 한 번도 에이전시를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으니 면접에 갔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른 곳은 면접 취소를 하고 중간고사까지만 마무리한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인턴에게 맡겨진 업무는 그다지 전문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냥 바빴다. 종합광고홍보대행사지만 언론홍보 업무가 많은 곳이라 내내 보도자료 작성과 보고서 작성에 시달렸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건 내가 입사하고 약 1달 동안 작성한 기사가 대략 130개에 달했다는 거다. 보고서도 어마무시했다. 함께 입사한 동기는 일이 얼마 없댔는데, 내가 속한 팀은 정말 너무 바빠서 퀘스트 해내듯 업무 하나 해치우고 화장실, 다시 일하고 물, 또 해치우고 스트레칭의 무한반복, 그러다 보면 퇴근시간이 되어 있었다.
바쁘다 힘들다 앓는 소리를 하니 들려오는 위로는 네가 일을 다 해내서 늘어나는 거다, 그냥 좋게 생각해라였는데 지금은 이해가 되지만 당시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 못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이왕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칭찬받을 정도로 해내고 싶어 묵묵히 주는 일을 다 받아했다.
그러다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았다. 인턴 경력만 가지고 또 다른 금턴에 도전할 계획이었기에 인턴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기업의 면접에 다니곤 했는데, 막상 정규직 제의를 받으니 마음이 흔들렸다. 1년 전만 했어도 당당하게 감사하지만.... 했겠지만 코시국에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원이 되면, AE가 되면 어떤 일을 하는지 실제로 경험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기에 정규직 전환에 도전, PT를 거쳐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종합광고대행사의 AE로 딱 한 달을 근무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