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제 분유

파란 통

by Qunsi

아이가 태어나고 가장 많이 사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분유다. 매일 먹고 싸고를 반복하다 보니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는 조리원에서 아이가 먹던 국산 분유를 그대로 먹였다. 이유는 다른 분유로 바꾸는 것이 혹시 탈이 날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조리원에서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100일이 지나서였다.

아이가 분유를 안 먹기 시작했다. 젖병을 주면 허겁지겁 원샷을 때리던(?) 아이가 1/3을 남기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절반 가까이 남겼다. 걱정이 돼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물온도 70도 이상에서 분유를 타야 맛있다.', '먹이는 자세가 잘못됐다.', '분유를 바꿔야 한다.' 정말 수십 가지 분유 잘 먹이는 이유가 적혀 있었는데 거짓말 안 하고 웬만한 건 다해봤다. 수유쿠션, 젖병, 젖꼭지를 바꾸고 자세부터 물온도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그런데도 아이의 수유양은 늘어나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의 몸무게는 상위 30%에서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분유 바꾸기'.

가장 마지막까지 분유를 바꾸지 않았던 건 할인받아 잔뜩 구입한 조리원 분유가 부엌에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대형마트에 분유를 사러 갔다. 만 원대부터 4만 원대까지 정말로 다양한 분유가 있었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얼마짜리를 사야 될까..

적당하게 중간 가격대인 2만 원대 분유를 살까? 아니면 저기 화려한 파란 통 케이스의 독일제 분유를 살까 한참을 고민 끝에'그래 아이가 고르는 것으로 사자'라고 의견을 모았다. 아이에게 두 가지 분유를 동시에 보여줬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씩 번갈아보며 신중하게 보더니 가장 비싼 파란 통을 골랐다.

아내와 나는 웃픈 표정을 지으며 4만 원을 넘게 주고 한통을 샀다.


집으로 가져와 조심스럽게 분유를 오픈했다. 기분 탓인지 향도 더 진한 것 같고 입자가 고운 느낌이었다. 정성스럽게 한 톨도 흘리지 않고 잘 제조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분유 시음회를 시작했다.

젖꼭지를 조심스레 아이에게 갖다 대니 몇 번 먹어보고 잠시 멈춘 뒤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 분유 때문이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그동안 값싼 분유를 먹여서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되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남은 국산 분유를 헐값에 중고거래로 모두 팔고 비싼 독일제 분유로 바꿨다. 덕분에 내와 내 밥상은 간소화되었지만 이만큼은 역시 비싼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먹였고 아이는 기대에 부응하며 쭉쭉 잘 먹었다. 몸무게도 늘기 시하며 그렇게 먹태 기는 극복이 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다시 먹태기가 찾아왔다.

비싼 분유라서 먹었던 게 아니라 그냥 새로운 맛에 일시적으로 잘 먹은 것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잘 못한 게 아니었구나. 싼 분유를 먹여서 안 먹은 게 아니었나.

값싼 분유는 맛이 없어 잘 안 먹고 비싼 분유는 맛있어서 잘 먹는다면 비싼 걸 먹이지 못하는 부모들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차라리 다행이다.


혹시 분유 때문에 고민이 있는 초보 엄빠들이 있다면

주머니 사정으로 비싼 분유를 못 먹이는 엄빠들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괜찮아요, 비싼 것도 안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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