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손수제비

애호박 듬뿍 손수제비의 맛

by 버들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구의동 집에 들른다.

쫑이도 보고 텃밭에 상추와 고추도 훔쳐 올 겸 자주 가려고 하는 편이다. 미쳐버린 6월의 더위 때문에 주춤하지만 하루하루 달라져 있을 텃밭을 생각하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가려고 한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쫑이랑 한바탕 놀아준다. 일주일 동안 무얼 하고 지냈는지,

내 생각은 많이 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한참 인사를 주고받은 후엔 쫑이만 한 대야를 들고,

엄마가 여행지에서 사 온 챙이 넓은 모자를 챙긴 뒤 문을 열고 마당 텃밭을 순찰 나간다.




일주일 동안 어떤 놈이 얼마나 자랐는지, 열매는 잘 여물고 있는지 한 바퀴 돌아본 후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이 시간을 퍽 좋아한다. 쫑이와 인사하는 것처럼 작물들을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말도 걸어본다.

잡아먹기(?) 전 조금 더 친해지는 느낌이랄까.

현재 집 텃밭 상황은 상추, 고추, 블루베리, 오이, 무화과, 깻잎, 토마토가 열일하고 있다.

나는 그중 쌈채소와 고추는 빼놓지 않고 늘 훔쳐온다. 블루베리는 일찍 일어나는 새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훔쳐 먹는 중이라 꿈도 못 꾸고

열심히 완숙을 향해가는 토마토는 아직 미숙이라 영양분이 온전히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갈 때마다 뭐 훔쳐갈 게 없나 대놓고 눈이 바쁜 도둑 딸내미를 위해 엄마는 그저 뭐 하나라도 더 챙겨가라 입이 바쁘다. 그러던 오늘은

”구석에 호박 주먹만 한 거 따가! 딱 한 끼 먹을 양이야, 지금 먹기 좋으니깐 가져가~“ 그 말 한마디에

다시 마당으로 뛰어 나가보니 내가 미처 발견 못한 덩굴 속 동글동글 반짝이는 애호박이 매달려 있었다

’ 그래! 바로 이놈이다!’ 가위로 뚝. 꽁지머리를 갖게 된 이 반짝이고 동그란 애호박으로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을 하는 그 순간이 나에겐 매우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채워진다.

여행을 하는 일도, 쇼핑을 하는 일도 맛집을 가는 일도 아닌 텃밭을 둘러보고 초록을 만지며 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그 소박한 것들이

나에겐 무엇보다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 매끈한 애호박을 보니 바로 생각난 것이 있다.

’ 감자수제비!‘ 마침 전에 사둔 감자 한 박스를 어찌하나 했는데, 햇감자와 텃밭애호박의 만남이라니! 당장 마트에 가서 통멸치를 샀다. 오빠에게 “내일 아침은 감자호박수제비야!”라고 당차게 메뉴를 외치니 “그럼 반죽은 내가 할게!” 라며 당차게 제 몫을 챙겨간다. 휴일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냄비에 물 한가득 멸치 한 줌 푹푹 끓이며 감자와 애호박을 다듬는다. 오빠가 열심히 쳐댄, 숙성까지 마친 봉긋한 반죽을 엄지 손가락으로 툭툭 뜯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껴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수제비를 집에서 자주 해 먹었다. 그때마다 손가락 구석구석을 씻고 엄마 옆에서 뜨거운 육수가 손에 튈까 겁을 내면서도

쪼물딱 쪼물딱 반죽을 뜯는 게 재밌어서 늘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십여 년 전의 그 손이 알아서 움직여주리라 믿는다. 맛있어져라~~ 잘 익어라~~ 주문을 외쳐가며 한숨 끓이면 끝. 일찍 넣는 바람에 애호박은 다 뭉그러졌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맛있는 우리의 손수제비가 완성되었다. 대접에 두둑하게 담아낸 뜨끈한 수제비를 한 숟가락. 청양고추양념장 얹어 얼큰하게 또 한 숟가락. 포근포근 감자 한 숟가락. 달큼한 애호박 한 숟갈 가득. 30도에 육박한 6월의 여름 아침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한상이 있을까.



뜨끈하고 쫄깃한 우리의 손수제비를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비워내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원한 보리차 한 모금에 “아~잘 먹었다! “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번 여름은 우리가 함께 만든 이 손수제비처럼 든든하고 달큼하길 바라며! 텃밭 염탐하러 또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