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넘치는 마음엔 저주가 들어 올 틈이 없어
혼자 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앞서 건너던 청년이 손에 들고 있던 캔음료를 길바닥에 두고 가는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쓰레기통이 바닥에 뚫려있기라도 하나 한참을 봤다.
뒤따라 건넌 나는 본능적으로 덥석 그 캔을 주었다.
청년과 함께 있던 일행이 내 모습을 보기라도 한 듯
한번 흘기더니 떠든다. 마침 나는 집에 가던 길이었으니깐 가서 버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내 모습을 봤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집에 와서 캔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을 때까지
그 청년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새삼 감사해졌다.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분노했을 것이고 한참을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나무 가로수 밑 놓여있는 캔 하나에 인간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그 청년을 저주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정작 캔은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그 예전의 나(공황장애를 겪기 전)를 몇 해 지나 온 지금의 나는 ‘오히려 내가 봐서 다행이다. 내가 쓰레기를 버릴 수 있으니 ‘라고 감사해하기로 했다.
그러니 그런 모습을 봐도 마음이 괴롭지 않다.
세상에 분노를 쏟지 않아도,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아도 된다.
그 청년에게 손가락질을 할 필요도 없다.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지만
쫓아가 화를 내기보단 내 손으로 버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너 같은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그런 행동은 옳지 않다는 걸 쫓아가 알려줬다면
더 좋았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속에 숨어있던 화가 함께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내 감정, 내 행동은 내가 선택하는 어른이 되기로 했으니 순간의 화는 흘려보낸다.
내가 보고 내가 불편하면
내가 가져가 버리면 그만이다.
다행히 그 청년이 내 행동을 봤다. 자기가 먹고 버린 쓰레기를 가져가는 미친 여자 정도로 생각하려나.
그럼 아쉽지만, 반성의 씨앗이 자라나길 그 청년을 위해 기도 할 뿐이다.
이 모든 감정의 흐름이 행동으로 오기까지,
억지스럽지 않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까지가
몇 해가 걸렸는지. 나를 위해 사랑하자 연습했던 하루들이 여유를 가져다줬나 보다. 여유 있는 마음은 지갑에서 오기도 하지만 사랑과 연습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