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데이 앱과의 첫 만남
나는 나대로 딸아이는 또 딸 아이대로 힘겨운 한국 생활이었다.
태국의 넓은 집을 놔두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딸들로 구성된 온전한 가족의 모습을 놔두고, 볕도 잘 들지 않는 성남 모란의 그나마 방 두칸짜리 다가구주택은 그대로 이것이 나의 무덤인가 싶을 정도로 음산했다.
한국으로 올 때 딸아이와 나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약속을 했다.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남은 1년반동안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달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을 미련이 남지 않게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딸에게 고등학교는 자퇴하지 말고 졸업을 하며, 대학입시를 치르는 것까지를 지켜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바라는 바를 들고 협상테이블로 나왔고, 그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이 되어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코로나 상황이 끝나지 않아 학교는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했고,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만남과 모임이 제약을 받았으며, 마스크 착용일 일상화되어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는 날이 올까하는 의구심이 들정도였다.
마음도 맞지 않는 딸과 둘이서만 콧구멍만한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자니 밤마다 불쑥불쑥 짜증과 원망과 불안이 엄습했고, 이유없이 눈물을 불러왔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지하1층 지상3층짜리 구 연립주택들은 서로 얼마나 촘촘히 붙어있는지 지하가 아니어도 하루중 햇볕을 허락하는 시간이 1시간 남짓으로 극히 짧았다.
옆집 아저씨가 헛기침하는 소리와 윗집 청년이 화장실에서 근심을 해결하는 소리까지 함께 공유하면서 살아야하는 이 곳에서 나는 늘 내 몸에 배어있던 어린시절의 가난과 그로부터 체득된 막연한 불안감과 자기파멸적인 생각들이 매일 밤마다 스멀거리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음을 억누르라 힘이 들었다.
그 공간이 힘들었으므로 나는 주로 밖으로 나왔다.
탁트인 탄천변을 걸으며 그래도 코로나 시기에 걷기는 허락됨이 감사할 뿐이었다.
집앞 나지막한 산턱에 마련된 공원도 집에서 도망쳐 나와 앉아있거나 걷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 때 딸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집에서 지하철로 세정거장 거리였는데, 밤늦게 오는 딸을 마중하기 위해 나는 그 길을 걸어서 마중을 갔다가 딸이 끝나면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2시간이 넘도록 걸어야 살 수 있었다.
발가락이 발바닥이 종아리가 무릎이... 아파야 살 수 있었다.
다른데가 아파야 마음이 아픈 것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딸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과 학업까지 두 가지를 해내느라 바빴고, 그래서 늘 힘들고 우울했고 지쳐갔다.
나는 나대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생활비라도 보태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다 보니 나 역시도 지치고 힘들고 우울해져갔다.
그러면서 갈등의 골도 더 깊어지고 어느 순간에는 서로 방문을 닫고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나가기도 했다.
때론 이렇게 사느니 그냥 둘 다 이 삶을 정리해버릴까 싶을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는 날도 있었다.
두 집 살림 벌려놓게 한 게 남편한테도 못내 미안했고, 엄마 손 없이 남겨진 중2 막내아들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그때 큰아들은 군 복무 중이었는데, 정말 큰아들한테는 신경을 전혀 못써줘서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우울함과 무기력이 나를 온전히 잠식해버리기 전에 운동화 끈을 조여매며 밖으로 나와서 걸었다.
그러다보니,,,
힘든 것도 오래 지속되면 적응되기 마련인건가?
서서히 콧구멍만한 집도 내 집처럼 여겨졌다.
옆집아저씨의 헛기침 소리도 어느새 누군가 내 주변에 있으니 걱정말라는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했다.
봄에는 벚꽃으로, 여름에는 초록잎사귀로, 가을에는 낙엽으로, 겨울에는 흰눈으로 반겨주는 집앞 공원도 사랑이었다.
길게 뻗어서 사람들에게 운동하기 좋은 길을 허락하는 탄천변도 감사함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을 하늘을 보고, 발을 내딛고, 계절의 바람을 느끼면서라도 마음을 정돈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매일 걷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런데이라는 앱이 있는데, 이 앱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면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오래동안 걷기를 해왔으니 이제는 달릴 수 있을거야.”
나는 그 말에 솔깃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운동 바보인 내가, 그저 숨쉬기 운동만이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걷기는 운동이 아니라 생존이었던 내가,,,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앱을 설치하고 있었다.
첫날, “1분 동안 달려볼게요.”라는 보이스 코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밝고 친절한 목소리로 달리기의 올바른 자세와 숨쉬기 등을 잘 안내해주었다.
달릴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할 새도 없이 1분 달리기는 의외로 빨리 진행되었다.
1분 달리고 2분 걷는 그 루틴을 4번 정도 반복하는 첫날의 프로그램을 나는 어렵지 않게 잘 해냈다.
작은 성취감이 생겼고, 이상하게도 가슴이 조금 벅찼다.
새롭게 알게된 런데이앱의 보이스코치는 매일의 힘겨운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밝기만했다. 그래도 그 목소리가 밝아서 힘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