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창살

희망이 전부인 날들이 있다고

by 김아현

고성을 지르는 바람에 맥없이 진동하는 창살이 쿵쿵거리며 유리창과 부딪혔다. 이따금씩 휘몰아쳐 감기는 거센 바람과 비바람의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힘을, 창살은 겨우 견디고 있었다. 창살의 진동은 끊어질 듯 이어졌다. 잠잠한 듯하면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게 아직 살아있다고, 뒤로 물러날 수 없음을 시위하는 것처럼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그 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광막한 천장에 시선이 꽂혔다. 비바람에 지워지는 듯 윤곽을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는, 도화지에 번진 수채물감처럼 흐릿한 흰 창살이 보였다. 나중에는 몰아치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체념하는 것을 선택했는지, 고요한 방에 등을 기댄 창살은 세계의 흐름대로 덜컹거렸다.

어떤 세계와 싸우는 소리는 저렇겠구나. 아니, 버티다 힘에 부처 벽에 틈틈이 부딪히는 소리겠구나. 힘들겠네. 힘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쉽게 들리는 소리겠구나. 그러면 내 마음에도 저런 소리가 들리고 있겠네. 맥없이 흔들려도 믿을 구석을 더듬거리는 어떤 이를 닮은 소리.

방안의 침묵이 무거웠다.

침묵이 무겁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침묵의 무게를 어떻게 아느냐고. 저렇게 흔들리면 벗어날 틈을 노려야지, 입을 단단히 잠구는 일이면 충분하냐고. 그러면 바뀌냐고. 입을 열고 눈을 뜨고 손을 뻗어 펀치를 날려도 모자랄 판에 가만히, 그저 침묵을 지키면 된다니. 침묵이 돌이니.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변하지 않아. 감각할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빨려 들어가는 망각의 궤도에 걸터앉은 사람들은 후들거리는 창살에 흘러내리는 빗물과 비바람을 일제히 무시한다.

창살이 저렇게 흔들리는데 변하지 않는다는 말. 위태로운 창살의 연약함을 푹 찌르는. 영원히 연약한 사람으로 남길 바라는 어떤 잔인한 구석들. 시간이 지나도 예전의 나를 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할 거라고 믿는 어떤 위선.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와 비슷한 수준의 인간들.

흐르는 눈물은 액체인데 명치에는 고체가 걸렸다. 여린 창살이 세차게 후들거리던 날에도 자랐다고. 머리맡에 맴도는 그 말을 손에 쥐어 보았다. 그럼에도 울리는 마음처럼, 어두운 방 안의 작은 테라스에서 흐릿해지는 창살은 이따금씩 쿵쿵 부딪혔다. 내일을 믿고 싶어서 믿는 사람처럼, 믿는 자신이 되어 누군가에게 믿음을 심어줄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것처럼.

창살이 계속 흔들린다. 떨어질 듯하면서 붙어있다. 잠깐 조용해지는 틈을 타 떨어지는 창문을 상상했지만, 기어이 창문은 달려있다. 흐릿한 창살을 곁에 둔 마음은 오래 침묵했다. 마음은 침묵으로 감각한다. 어떤 기대가 있을까. 어떤 기대가 있다면. 조금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면. 기어이 달려있는 창살을 기대한다. 흔들리는 틈을 타 기대가 자란다. 그 희망이 전부인 날들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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