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깨끗한 어둠이요, 티 없는 밑바닥이었음을
제일 먼저 윗옷과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바지와 양말을 순서대로 벗었다. 아마 침대 부근일 것이다. 거리 감각을 대강 느끼며, 어두컴컴한 방에 풀썩 주저앉았다. 거북목으로 바닥을 향하던 시선을 나는 모른다. 다만, 빈 동공으로 가득히 어둠이 몰려오고 있는 것 만 알 뿐이었다. 잔상이 머릿속을 격렬하게 헤집었다. 떨칠 힘이 없다. 참고 있었다는 걸 알 길이 없다. 당장 어둠이 필요한 나는, 내일의 나는, 참느라 또 참고 있는 나를 모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내인가. 나는 인내를 배웠던 것일까. 나는 인내를 배운 대가로 잔상을 얻었다. 조각으로 나뉜 몸들이 덤덤히 걸어왔다. 영원히 올 것 같았다. 끝나지 않는 흐름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필멸자에게 한 수 알려주겠다는 듯이 영원히 올 것 같았다. 힘을 잃었다. 밑바닥을 보는 건 쉬운 일이었다. 기어이 밑바닥과 긴밀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혼탁하지 않았다.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다만 어둠에 둘러싸인 내가 편했을 뿐이다. 그 사이 어두워 보이지 않던 방의 형체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알았던가. 빈 동공에 가득 찬 건 그러므로 나의 깨끗한 어둠이요, 티 없는 밑바닥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