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목적을 초월한 글쓰기의 속삭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커녕, 글로 밥 해 먹겠다는 생각은 감히 품은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뭐가 되었든 꾸준히 쓰고 싶은 마음은 쉬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신춘문예나 등단이란 거대한 산맥을 넘지 않고도 쓸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을 때, 이제 뭐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겠구나 싶어 무척 기뻐했었다. 하지만 작가 승인을 받고 나서 반년만에 쓰려했던 글의 방향을 상실하고는 세 달 가까이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백지 같았다. 무슨 글을 어떻게 쓰고픈 계획이 백지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백지 같은 상태가 좌절이나 실패에 가까운 상태가 아니라, 나는 그 속에서도 이상하게 희망 같은 것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새로이 자라나 뻗어 나는 소재에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있었다. 준비된 것도 재능도 쥐뿔 아무것도 없는데 희망이라니, 정말 이상했다. 이 백지 같은 실천이 일여 년 동안 유지해 온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 순간 갑자기 그간 우리가 살면서 배운 믿음 하나를 단박에 척결할 용기가 생겼다. 목적을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기와 연장 같은 수단을 갖춰야 한다고 여겼던 믿음을 부술 용기가.
재능과 관계없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힘이 된다. 재능 없이 시작해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은 생긴다. 원대한 목적이 없어도,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꾸준함으로 쌓아갈 수 있다. 브런치스토리가 나에게 준 메시지는 이러했다. 그래서 부담이 없었고, 부담이 없었기에 중간에 공백이 있어도 오뚝이처럼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수단과 목적이 없는 순수한 시도로 백지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세 달의 적잖은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 나는 아무 일도 없듯이 첫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유일한 목표가 있다면 브런치북 하나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나는 뿌듯함에 취해 혼자 신나 했었다. 9년 전에 쓴 시와 생애 첫 신춘문예에 투고했던 글을 모아 자작시집 느낌으로 만들었는데, 만약 작가가 되겠다는 둥. 책을 내겠다는 둥. 남들처럼 이렇게 저렇게 되겠다는 둥. 행동에 앞서 목적의식만 과도하게 높았으면 이 작은 시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면 좋을 일이지만 그럴만한 실력이 아니란 것을 잘 알거니와 무엇보다 타인의 관심이 글쓰기의 주목적이 되어버리면 글쓰기는 자연히 수단으로 타락해 버릴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요새는 처음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로 승인받았던 그 작은 행복감을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인정을 구걸하는 길로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떻게든 시작한 연재 글에 미흡한 구석이 있다 해도 마무리 짓는 꾸준함으로 글 속에서 나아가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신춘문예에 도전한 것도, 포기할 듯했던 글쓰기를 브런치북을 만드는 일로 복기한 것도 생각해 보면 수단과 목적의 구분 없는 순수한 즐거움 때문이었다. 지난날에 허물어졌던 낡은 돌담 같은 꿈들이 사라져 간 이유는 즐거움 없이 이뤄야만 했던 강박 때문이었음을, 브런치스토리에서 즐겁게 쉬어가는 자신을 보면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목적도 중요하지만, 목적 그 자체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했을 때 오히려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브런치에서의 활동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나아가는 길을 잘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걸, 그렇게 걸어도 얼마든지 다른 꿈들이 몽실몽실 떠오르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고 믿고 있다. 또 다른 연재,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장르...... 작가라는 목적을 따로 두지 않아도 앞으로 써야 할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걷는 길이 백지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쓰는 즐거움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고, 그 흔적을 차곡차곡 남겨두는 일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