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뭐든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면 뭐라도 되겠지

by 김아현

정해진 것 없이, 목적도 모르지만 쓰면서 나아가자는 마음가짐은 참 따뜻하다. 채찍질하며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번 가보자, 그래도 된다, 어찌 모든 일을 다 알고 갈 수 있겠니라며 우물쭈물 겁부터 먹은 이를 토닥이는 부드러운 힘과 배려의 말이 참 좋다.

꼭 글쓰기만이 아니더라도 목표라는 벽으로 인해 내가 먼저 허물어지겠다 싶은 나약함이 밀려올 때는 이 부드러운 힘에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된다. 그래, 어차피 지구상에는 완성된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완성의 완전한 의미를 설명할 수 없잖아, 라며 혼자 무슨 철학적인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같은 말을 되뇌며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몇 분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고는, 완벽을 추구한다고 머뭇거리는 것만큼 안타까운 미련은 없다고 은밀히 내면을 향해 꽥 소리를 질러버린다. 내가 내지른 목소리에 세포가 각성하듯 건어물처럼 딱딱하게 오그라들 것 같던 자존감에 다시 생생한 유연성이 돋아난다. 그렇게 또 허물어질 뻔한 나를, 내가 일으키는 것이다.


근 한 달간 다섯 군데 넣은 이력서 중 세 곳이 떨어지고 두 곳은 불투명한 시간 속에 떠돌고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영혼이 안다. 수 천만 번 했던 고민은 도움 되지 않고, 나는 다시 시도할 것이고, 합격하면 그만, 불합격을 통보받으면 또 잠시 나약해진 자신과 독대할 것이라고. 그런데 엊그제 문득 뭐가 더 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 학교 계약직 직원까지. 올해로 벌써 십 년째. 학교의 울타리를 멀리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나날 동안 남들 다 하는 이력서 투척도 해보지 않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는 거랑, 차라리 불합격 통보를 받고 새 출발하는 거랑 뭐가 더 나을까 하는 생각.

똑같이 나약함은 나를 일격해 온다. 그러나 글쎄, 그래도 투척이라도 하는 게 천 배, 만 배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느 곳이든 이력서 투척을 남발해 본 것은 출발선에라도 수 없이 서봤다는 것이니까. 서보면 뭐라도 나올 확률이란 게 있을 테니까. 어차피 둘 다 나약하고 불안한 건 매 한 가지지만 해보면 기회라도 건질 기회가 생긴다. 연습이라도 한 셈 칠 수 있다. 따지고 보니 좋은 점이 많다.


나약함이 눈가에 선명히 존재를 드러낸다면 역설적이게도 부족함 투성이라 여기는 것을 작게라도 실행해 보는 게 도움이 된다. 머리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정도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간극이 있으니까. 평가는 또 다른 문제다. 미련하는 사이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뀔 기회가 새벽 찰나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면, 그걸 생각한다면 능력이고 재능이고 따지지 말고 막 해보기라도 할 걸, 쓰고 싶을 걸 쓰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되도록 나는 개나 소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세상을 바란다. 이미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의 일이 요구되던 시대는 종말 했다. 어디서 칭찬 한 번 받지 못한 부족한 자질이어도 괜찮고, 책과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아도 상관없다. 끝내 발표하지 못한 글이어도 좋고, 글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세세한 계획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처음부터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 뭐라도 쓰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적으면 더 나아지겠지. 고칠 수 있으니까. 고치면서 다른 생각이 가지처럼, 이파리처럼, 꽃처럼, 열매처럼 자라고 익어가겠지. 그 사이 나도 나이 들 테니까. 또 모르지. 책과 멀어던 사람이 어느 날, 나 글 쓰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벌써부터 건망증 환자 될까 겁나. 나 이제부터 책 읽을 거야, 라며 책을 사고 집 안에 책장을 들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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