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부터 떠난 마음은 쓰기로부터 되돌아온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되었지만, 꾸준히 활동한 기간을 계산하자면 채 반년도 되지 않는다. 작가 신청을 할 때 속으로 써야지 했던 글이 있었는데, 준비가 허술했던 탓에 내용과 구성이 산으로 가버려 제대로 쓰지도 못했고, 시작은 했으나 마무리 짓지 못한 글은 게시물 목록에 남아있다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후 딱히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하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공백기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공백기는 3개월 남짓 정도였다. 작가 승인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쓰기를 멈추었으니, 한창 열심히 타올라야 할 열정과 애정이 별 볼일 없이 식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조차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쓸 생각이 아예 없었나, 질문해 보면 그 정도는 아니란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 뭐냐. 몰입할 글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쓰는 마음이 이렇게 쉽게 고개 꺾일 것 같았으면 끝도 없을 약속을 지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계획하지 않았을 일이고, 나아가 애초에 글을 쓰기에 적합한 플랫폼을 찾으려는 조금의 고려도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것은 잠깐의 멈춤이고, 숨 고르기였던 것 같다.
다행히 쓰고자 하는 마음에 별 탈이 없음을 알게 된 건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가 나를 습작의 세계로 밀어 넣은 것이다. 작년 시월 말인가, 십일월 초였던 것 같은데 지인의 말에 흔들려 신춘문예에 투고할 시를 급히 창작했던 시간이, 미미했던 열정에 다시 불을 댕긴 것이었다. 예상하지 않은 탈락은 아니었으므로 별 타격은 없었다. 최소 1,000대 1의 확률이었고, 그 엄청난 두께의 옹벽을 녹일 감성과 심사위원의 시선을 사로잡을 위트를 고작 한 달 반 만에 만들어내는 일이란 게 오죽 만만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그때 당시 신춘문예에 투고하기 위해 출퇴근을 막론하고 쉴 때마다 야시 같은 루팡짓(월급을 받으면서 몰래 딴짓을 많이 하는 행동)을 하면서 적지 않았다면 글을 적는 일에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안 쓰는 공책을 찢어 만든 자체 시집 속에 직접 쓴 시도, 브런치스토리에 처음으로 만든 브런치북도 다 신춘문예에 떨어진 대가 나온 결과물인데, 아마 어떤 길로든 쓰지 않았다면 이러한 결과물도 없지 않았을까. 쓰기로부터 떠난 마음은 쓰기로부터 다시 되돌아온다는, 이토록 신기한 단순함이 쓰기의 또 다른 묘한 매력임을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실감한다.
쓰는 마음을 지키는 건, 쓰기를 계속 실행하는 것. 그것밖에 없다. 그 누구도 잘 써야 하는 것이 삶의 의무인 것 마냥 말한 자가 없고, 도대체 잘 쓴 글이란 건 무엇인지. 인간은 기대만큼 명징하고, 변함없는 기준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작품성에 대한 한 평가도 제각각이라 종 잡을 수 없으니, 내가 어떻게 따라잡을 수 없는 평가에 대한 생각은 조금 뒤로 미루고 어찌 되었든 쓰는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볍게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장 나를 편안하게 하는 장소를 찾아가 노트북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일. 그 정도의 고민이면 충분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