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하고 싶은 일은 가장 늦게 알게 되는 법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사촌 동생과 투룸 집에서 각자 방 한 칸씩 나눠 쓰며 살던 작년 이맘때쯤, 나는 그 작은 방에 어떻게든 서가를 마련하고 싶었다. 사실 작은 책장이면 충분했지만, 거의 매년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 가구를 들이는 게 괜히 짐만 늘리는 일이 될까 봐 막상 구입하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동생이 들어오기 전까지 같이 살던 남동생이 현관에 두고 간 철제 선반을 우연히 발견한 나는, '옳거니, 잘 됐다' 싶어 당장 방으로 들여와 간이 서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책장에 꽂혀있던 기존 책들 중 과학 분야 책들만 골라 하나 둘 철제 선반으로 옮기고, 선반 맨 아래칸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집어넣어 정리를 끝냈다. 뒤판이 없는 선반이었지만 양옆의 다리를 책 지지대 삼아 꽂으니, 작은 도서관 같은 분위기가 방 안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작은 방안이 내가 사랑하는 분위기로 둘러싸이자 나는 그 흐름을 타고는 갑자기 뭐라도 노트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왕이면 노트 끝까지. 마지막 장까지. 직접 쓴 글로 채우고 싶어졌다.
선반 아래 넣어둔 바구니에는 아직 쓰지 않은 새 노트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책 다음으로 아끼는 보물 같은 노트들은 크로키 연습용 노트부터 전시회 굿즈로 산 것, 누가 쓰다만 것, 버리기엔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까지 한데 뒤섞여 있었다. 뭐라도 기록할 내용이 있겠지 싶어 보관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점차 쌓이더니 언젠가 바구니 하나가 넘칠 정도가 되어버려 바구니를 들면 손가락이 패일 것 같이 아플 정도로 무게는 제법 나갔다. 약 일, 이년 이상을 특별한 쓰임 없이 보관하고 있던 노트들을, 그간 여러 번 목적을 바꿔가며 되도록 오래 사용할 길을 모색했는데, 보기 좋게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했다. 뭐라도 좋으니 일관된 속도로 꾸준히 기록을 쌓아가고 싶던 마음은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듯했다.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하지만 나조차 모르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바구니를 가득 채운 공책들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게 될지는 주인조차 알 수 없는 것인가. 마땅히 마음에 들어맞는 주제를 찾는 일도 자신의 인생길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했다.
스탠드가 켜진 방 안의 창문 너머 어두운 세상 속에 장렬히 울던 귀뚜라미 소리를 기억한다. 내 노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선명해졌던 그 밤, 시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벼락처럼 떠오른 것이다. 당시 일하고 있던 대학교에서 행사 기념으로 받은 노트가 있었는데, 그 밤에 노트의 표지와 학교 홍보 내용이 인쇄된 속지를 절반 이상 뜯어내고는 원래 노트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속지 위에 네임펜으로 '자작시(自作詩)'라고 적었다. 본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갖춘 노트는, 그렇게 시집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시집이라 불릴 노트에 막상 적을 시를 가지고 있지 않던 관계로 또 겨울까지 그냥 서랍에 넣어두어야만 했다. 시무룩하지 않았다. 서랍을 열어 그 속에 누워있는 시집을 가끔씩 볼 때면 오히려 설레었다. 채워갈 나날이 기다려지는 마음이 그런 것이었나 보다. 그러다 작년 겨울에 생에 계획에도 없던 신춘문예 공모전에 투고한 몇 편의 시들을 시작으로, 시집의 한 면을 천천히 채워갈 수 있었다. 비록 공모전에 떨어진 작품들이었으나 그런 작품이라도 써본 경험 덕에 탄력을 받아 그 뒤로 반년을 꾸준히 시를 습작할 수 있었다.
그간 브런치스토리에 자작시 '검은 바다'를 시작으로 서른 여편이 갓 넘는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지난겨울 공모전에 떨어진 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여러 방면으로 의도를 바꿔가며 노트를 써왔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행한 글 중 몇 편의 시는 대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끄적였던 글에서 비롯되었다. 문장을 새롭게 고치거나 문단을 바꿔보기도 하고, 되려 영감을 받아 아예 다른 시를 새롭게 적어보기도 했다. 특별히 뭘 어떻게 해보리라는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은 아니어도, 언제든 필요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쓸모를 미리 계산하는 것이 왜 어리석고 섣부른 판단에 불과한지 말이다.
여기서 오래 써야겠다, 오래 쓰고 싶단 생각이 굳어졌나 보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오래 써내려 갈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그걸 찾아가며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쓰기의 과정에는 타인이 있고, 또 나와 세상이 있다. 그런데 글쓰기가 참 아이러니한 건, 개인의 궤도를 벗어나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히는 순간, 되려 쓰기에 제동이 걸려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쓰기를 택했다면, 종이 위에서든, 플랫폼 상이든 주어진 공간에서 오래 글을 써 내려가려면 사유의 시간이 충분히 가져 스스로 탐구할 주제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오래 써내려 가기 위해 사유가 필요하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유는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나온다.
글의 주제와 방향성이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누군가의 이목을 끌만한 글이 그만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특정한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보다, 스스로 밀고 나가는 연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나만의 헌 시집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