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과 냄새, 그리고 책
향기는 기억의 또 다른 영혼이라서, 어디선가 그 비슷한 향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를 관통하게 된다. 특별히 애정하는 향이 없는 나에게 어느 순간 간직하고 싶은 향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움일 것이다.
그리움은 이런 모습이었다. 시멘트 발린 벽돌을 쌓아 올리듯 책과의 인연을 다듬어갔던 자리. 척하며 숨기고, 좋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다가가면 각각의 진솔한 이야기가 보란 듯이 펼쳐진 공간. 흐르지 않는 시간을 거시세계에서 마주할 수 있게 했던, 작은 우주. 오래간 내가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걸, 나는 아주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열 살이던 그 해 5월에 이사를 하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에는 마을 유지처럼 도로변을 환하게 밝혀주던 서점이 있었다. 상아색 간판에는 굴림체와 궁서체가 섞인 글씨체로 '옥문당'이라는 글자가 크게 박혀있었다. 당시 서점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 바로 옆에 위치했었다. 서점 맞은편에는 낮은 아파트를 둘러싼 시멘트 울타리가 인도를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고, 어린 나는 부모님 손 잡고 서점과 대여점이 함께 있는 그 인도를 거의 매일 걸어 다녔었다.
동네 시장이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에 다녀오는 길이면 서점을 지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서점을 잠시 들리시곤 하셨다. 꼭 사고자 했던 책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놀러 가듯 간 것이었다. 옥문당은 동네 서점치고는 그래도 큰 편이었다. 유리문을 열면 통창에 환하고 시원했던 냄새가 온몸을 덮쳤는데, 도로에서 흔히 마주하는 냄새와는 분명 달랐다. 뜨겁거나 차가운. 평범하거나 인조적인. 이런 극단들이 뒤섞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평정(平靜)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는 서점에서 요리책이나 패션잡지를 뒤적거리며 읽으셨고, 그러면 나는 하얀 타일 바닥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원목 재질의 판매매대에 꽂힌 책들을 구경하곤 했다. 새로 입고된 책들을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 비닐로 포장된 '살아남기' 시리즈나 '무서운 게 딱 좋아' 같은 신간 만화책을 펼쳐보고 싶어도 그저 만지작 거리면서 궁금한 마음을 조용히 달랬던 기억. 엄마한테 받은 용돈을 고이 모아서 당시에 유행이던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 기어이 샀던 뿌듯함. 저녁이든 낮이든, 시간 대에 구애받지 않고 자주 서점을 오갔던 나날. 비디오테이프를 담은 검은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그 인도를 천진하게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어린 뒷모습과 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는 말. 그런 말이 바로 이런 기억을 두고 하는 거구나—그걸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이사를 한 뒤로 옥문당 서점을 거의 방문하지 못했다. 나는 자랐고, 커가면서 방황과 세상과 나의 경계 사이에서 은밀한 투쟁을 하며, 한 몸이 되어가는 불안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정신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내적 싸움을 지나며, 옥문당의 존재는 자연히 잊혀 가는 듯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문득 그 서점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떠오른 건, 학업과 일에 치여 힘들 때마다 옥포 동네를 한 바퀴 돌아주시던 어머니와의 드라이브 길에서였다.
아직도 있을까. 서점 부근 도로를 지나며 보니, 예전에 비디오 대여점이 있던 자리는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고 서점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망했나 싶은 생각에 살짝 시무룩해지려 하는 찰나, 돌아오는 길에 옥포사거리의 도로변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서점을 발견했다.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위치를 알고 나서 언젠가 다시 가리라 바로 마음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해 1월에 서점을 찾았다. 이후 3월에는 어머니랑 같이 서점을 또 방문했었다.
무려 34년 동안 한 동네에 있었던 서점. 약 20년 만에 다시 찾은 서점에는 예전의 상아색 간판은 없어졌지만, 하얀 외벽에 통유리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어릴 적 느꼈던 그 편안한 느낌은 변함이 없었다.
책과의 즐거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시절에도, 커서 책과 불화하던 시절에도, 그리고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던 어떤 날에도. 내 나이보다 더 오래 문을 닫고 열기를 반복했을 서점을 생각하면 조용하게 기다려 준다는 게, 어느 한 자리에 머무는 그 힘이란 게, 언젠가 처음의 접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항상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비현실적 감각이 현실을 끌어당겨 여기까지 온 것일까.
가장 빠르게 사지가 자라는 것. 그 무엇도 비견될 수 없는 속력으로 시공간을 관통하는 것. 멀리서 보면 단단히 굳은 것처럼 보이나, 실은 덜 마른 시멘트 바닥과 같단 사실을 알게 하는 것. 협소해 보이지만 더 깊이 들어갈 길이 있는 것. 삼세(三世)를 연결 짓는 흰 선 같은 것. 어떤 향기가 있고, 따라가는 내가 있었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