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선물

책을 품은 아이로 자랐으면 해

by 김아현

사랑을 대신할 선물은 이 세상에 없다지만, 사랑을 표현할 수단은 필요하므로, 특별한 날인 만큼 남는 선물을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5종 조카 지온이의 돌잔치를 앞두고, 처음 이모된 입장에서 의미 있는 선물로 적절한 것이 뭐 없을까 고민했다. 그냥 돈만 건네기엔 쓰면 그만일 테고, 어른과는 다르게 매일 성장한다고 바쁜 아기한테 옷은 시간이 지나서 보관하지 않는 이상, 입고 버리면 그만일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았다. 외가의 사촌 동생 이후로 20년 만에 보는 아기여서 그랬을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지온이의 몸무게처럼 불어나는 사랑에 버금갈 만한 선물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그 내용물까지 정해줬으면 싶지만, 그렇다고 힘들거나 난감할 것 까지야 없었다. 그 고민은 나에게 있어 충분히 행복한 고민이었기 때문에 즐겁게 궁리했다.

어쩌면 아기가 앞으로 살면서 영원히 가져갔으면 싶은 것을 바랐던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의사가 독서 습관 형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인즉슨 독서도 습관의 일종이라서 과거에 책을 가까이했던 경험이 많을수록 나이 들어서도 책을 읽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 당연한 이야기에서 순간 약간의 아찔함을 느꼈다.

초등학생 때부터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동화책을 빌려오던 엄마. 엄마는 매주 한 번씩 시장바구니 같은 손가방을 들고 동네 시립도서관에 가셔서는 책을 10권씩 빌려오곤 하셨다. 직접 가서 내 의지대로 책을 빌렸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은 아쉬움은 남지만, 집 현관문으로 들어오시는 엄마의 한쪽 손에 책들이 묵직하게 담겨있는 가방 천 겉면에 튀어나온 울퉁불퉁한 모서리 흔적을 볼 때마다 궁금함과 설렘이 뒤섞였던 감정은 여전히 생동하다. 엄마가 부엌 식탁이나 조리대 위로 손가방을 올려놓고 안방에 들어가시면, 나는 거실의 커다란 나무 탁자 위로 손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책을 엎지르고는 새로운 책을 만나는 쾌감을 즐겼었다.

내가 살면서 책을 잠시 놓았던 적은 있어도, 결국 다시 책을 든 건 언제나 다양한 책을 건네주던 엄마의 관심 덕분이었다. 나는 빠져드는 책은 몇 번이고 읽었고, 손이 잘 안 가는 책은 한 면씩 찔끔찔끔 보다 덮었다. 어려운 책이면 꺼리는 마음보다는 '나중에 크면 읽어야지' 하고 머리맡 책장 앞에서 마음먹기도 했었다. 위인전부터 시작해서 전래동화, 어린이 동화, 뮤지컬 이야기를 비롯해 많은 이야기가 나를 지나쳤고, 머물기도 했다. 특히 그리스로마신화는 당시 만화책으로 유명해서 엄마에게 받은 용돈을 한 푼 한 푼 모아서는 동네 서점에서 구매했던 뿌듯한 기억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생생하기만 한 기억이 이런 걸까. 그리스로마신화, 세계문학 시리즈, 뮤지컬 동화를 비롯해 많은 이야기가 나를 지나쳤고, 머물렀다. 완독의 유무와 상관없이 책을 가까이했던 시간 그 자체로 유익했다.

지온이가 조금 더 크면, 내가 읽었던 책 중에 꼭 전해주고 싶은 동화가 있다. 이희재 만화가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고정욱 작가님의 '가방 들어주는 아이'와 '안내견 탄실이'다. 모두 어릴 적에 수도 없이 읽은 작품, 이야기의 여운에 젖어 부모님 몰래 이불을 뒤집고 울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제 막 돌을 맞이한 터라 문장을 읽을 수준이 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크는 건 금방이니 조만간 구할 수 있으면 구해서 소장하고 있다가 선물로 줄까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지온이가 스마트폰의 매력보다 이야기의 감동을 먼저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던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타인의 세계에서 비롯되니까 말이다.

책은 읽어본 사람만이 꾸준히 읽을 수 있다는 말은 좀 무서운 구석이 있다. 어릴 적에 책과 가까이 한 시간이 부족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책을 펼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고, 그건 시기를 놓쳐버리면 독서의 재미를 영영 느낄 틈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독서에 내재된 고유의 재미는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부는 잘하면 좋지만 중간만 해도 큰 문제는 없고, 인생은 조금 돌아가는 길이 최적의 길이라면, 긴 시간 책 속에서 여기저기 방랑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다. 인내심과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너무 중요한 시대에 어린 날부터 책의 재미가 손에 쥐어진다면, 나는 그것이야말로 큰 선물이면서 자산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년 11월, 이제 막 생후 5개월 차를 넘기던 지온이는, 큼직한 눈망울에 입을 삐죽거리는 표정에서부터 벌써 낯가리는 성격이 만연해 보였다. 그 모습이 흡사 어릴 적 내 모습과 닮아 보여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그렇다면 너도 책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쳐서 돌 선물로 책을 골랐던 이유도 있다. 예전의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물로든 필요에 의해서든 관계없이 책을 전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이모가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살면서 힘들 때마다, 또는 사람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일 때, 익숙한 세계를 초월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지름길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면. 손에 쥐어진 책이 너를 이끌고, 책에게 질문하며 세상과 건강한 소통을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랄 때까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책으로 함께 이어지는 관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지온이에게 책을 선물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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