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인간적인 글쓰기

시간은 문장을 데우고 글은 천천히 끓는다

by 김아현

흰 바닥 위로 뭔가 써야 하는 삼엄한 중압감이 쓰기의 해방감을 야속하게 짓누르곤 했다. 개개의 지하 세계에서 비롯된 육중한 부피의 덩어리와 무게를 건져 올려 지상에서 고르게 매만지고 손질하는 작업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심심한 위로가 되어 준 건, 쓰기의 경력과 무관하게 누구든 흰 면의 공포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얀 백지의 아득함이 산골의 밤하늘 만치 깊은 어둠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기에, 어쩐지 공평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쓰기가 실로 지난한 동굴 같아도, 쓰고자 하는 의욕에 마음이 달궈졌던 건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에서였다.

모두가 힘들면 어려움은 기본값이 된다. 글쓰기가 그렇다. 다 어렵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은 오히려 반감이 되지 않던가.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글쓰기는 참 인간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글쓰기의 특성상 정형적인 성공의 도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인정받을 만한 자격의 글의 형태도 규정되어 있지 않기에, 어느 책에서 나온 문장처럼 다양성이 표준이다. 어차피 세상이 원하는 작품은 어디에도 없고, 숨겨져 있는 완벽한 작품이란 것은 없다. 하나의 글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손뼉 쳐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글쓰기에 있어 지레 겁을 먹거나 혹은 일찌감치 떨어져 자신이 글을 쓸 만한 능력과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일까.

글쓰기 기피 현상의 궤도에서 나 역시 특별히 벗어나지 못하던 나날이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은 상태가 보기 좋게 얽힌 그런 모양새였다. 깜깜한 고민 속에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글만 무한정 상상하곤 했던, 실로 짙은 회색의 갑갑함이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형국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여덟 달을 얇은 실 줄을 부여잡고 나아가는 둥 마는 둥 하는 심정으로 뭉그적거리던 논문을 가지고 있었다. 논문은 거의 방치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일 년 가까이를 부여잡았지만 쓰면서도 글의 주제가 너무 모호하단 느낌을 떨칠 수 없었고, 전공이 아닌 분야와 어정쩡하게 다리를 여러 갈래 걸치고 있는 것 같아서 진전할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힘에 부쳐서 일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까지 섰던 관계로 완전히 덮게 된 것이었다.

일이 끝날 때까지 한 동안 논문과 관련하여 마음 편하게 고민할 수도, 심지어 쓸 수도 없었다. 그 대신 걱정만 치렁치렁 열리고 있었다. 그러다 계약 만기일이 가까워 오면서 서서히 논문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 무렵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논문 주제를 새로 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걱정스러운 심정이 자석에 다닥다닥 붙은 철가루 마냥 자연스럽게 딸려 올라오는 느낌은 참 생생했다. 다 가라앉았다고 생각한 조급함의 물결이 아직 얇게 밑면을 찰랑거리고 있었음을 명징하게 자각했다. 글 앞에서 빨리, 잘 쓰고 싶은 보통의 마음이 물살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글쓰기를 방해하는 최고의 적수 또한 그러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글은 빨리 쓴다고 써지는 것이 아니야. 계속 고쳐야 돼. 쓰고 수정하고 쓰고 수정하고...... 그걸 반복해야 해.


마지막에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서야 글쓰기가 일종의 탈피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완의 글은 수정을 거듭하는 동안 기존의 의미에서 방향을 비틀기도 하고,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글은 마치 운동 후의 근육처럼, 점차 조직이 촘촘해지고 내실이 생기며 우리가 꿈꾸는 완성에 조금씩 다가간다. 본래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을 단숨에 끝내려 했으니,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정작 필요했던 것은 여유였다. 글쓰기의 막막함은 전 과정에 스며 있으며, 어떤 면에서 희열의 가장 근원적인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천천히 써나가며 서서히 뜨거워지는 과정을 생각하기보다 논문을 쓸 만큼의 시간을 현실과의 간극 속에서 재고 따지는데 신경이 기울였으니, 더 깊은 막막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 의미는 응원이었다. 다시 써도 되는 기회만이 펼쳐져 있다는 뜻의 위로였다. 계속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글쓰기가 마냥 힘들게만 다가올 수 있겠지만, 쓰고 쓴다면 사실상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일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고치면서 비실하고 엉성하던 내용이 풍성하게 차오르고, 어긋난 균형이 점차 자신의 지점을 찾아나간다. 이는 분명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 위에 있는 느낌이 틈 없이 옥죄어 오는 바닥 한가운데 서있는 것 같겠지만 걸어갈수록 알게 되리라. 무겁게. 천천히. 오래 끌고 가는 일 그 자체로 중요함이 무엇인지. 미완의 글은 무한한 수정의 굴레에서 탈피를 거듭하고. 시간은 문장을 데우고. 글은 천천히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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