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길을 만드는 건 인간의 몫
여러 해를 통틀어 가장 하얀 바닥
도톰하게 쌓인 하얀 눈을 곁에 두고
우리는 같은 계단 층에 서 있었다
동생뻘 되는 남학생이 말했다
저기 반대쪽에는 눈이 녹았는데
여기는 눈이 안 녹았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이곳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요
어쩌지 못한 모든 것
지우다 못해 덮인 것
녹지 않은 차가운 기억
녹지 않을 미래의 고통
녹지 않고 영영 남을 것 같은 느낌
긴 밤을 둘러 하나의 계절이 되기까지
생각으로 걷고 혼잣말로 토닥였던
숱하게 스쳤던 결심, 그 마음
남학생이 말했다.
이곳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요.
닦아주면
닦으며 녹아내리길 기다리면
해가 닿지 못하는 저어기 구석에
환한 볕이 있는 거지
마주하고 지워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에게는 따뜻한 햇볕이 있는 거지
너도 모르는
나의 발걸음 뒤로
뒤따라 오던 남학생의 발자국이
하나, 둘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