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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佛頭)의 고향

영원하지 않음으로 비롯된 고통에도 마음이 머문 자리로 돌아오는 힘

by 김아현

아유타야 사원의 벽면에 나부끼는 검붉은 딱지 위로 황혼이 내려앉았다

한나절 돌담의 틈새에 잠들어 있던 검푸른 이끼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나풀거리는 흙먼지 바닥을 나뒹굴던 초라한 불체(佛體)에 거뭇거뭇 기어올랐다


수인(手印)을 형성하던 손과 손목이 머문 자리에

새하얀 단전을 받치던 팔뚝과 어깨가 머문 자리에

반가부좌를 튼 허벅다리와 하늘을 보며 누워있던 발바닥이 머문 자리에

식지 않을 중생의 신음에 신묘한 염화미소를 지었을 불두가 머문 자리에

석불의 적적(寂寂)한 선정을 지지하던 반듯한 허리가 머문 자리에

무른 이끼들은 사선으로 절단된 매끄러운 상흔으로 거무튀튀한 숨을 내뱉었다


나는 보리수나무 밑에 쪼그려

석불 주변의 허공과 대비되어 유달리 두드러져 보이는

오종종한 검은 숨결의 지독한 향연과

살기 어린 작의(作意)의 흔적을 그저 바라보았다


흙먼지와 자갈로 그득한 땅바닥을 보며 읊조렸다

검붉은 물들이 흐르는 않은 자리에 대해

죽이기 위해 성성을 다한 매끄러운 절단면에 대해

이끼로 뒤덮여 상실된 불두의 고향에 대해

어두워지지 않는 것과 무너지지 않는 것에 대해


고개를 들어 흐릿한 눈으로 고요한 흙먼지 사이를 걸었다

그러다 아득한 암흑 속 어딘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반쯤 깨진 손으로 단전을 받치고 있는 고고한 선정인(禪定印)이 보인다

사라진 오른쪽 팔뚝 아래에서 버젓이 왼손과 맞닿아 있던 그 손

팔뚝이 사라진 자리를 메꾼 허공만은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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