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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바다와 소년

슬픔은 무엇으로 없어지고, 인간은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by 북인포레스트

소년은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서 애써 자신을 토닥였다

땅 안에 물이 흐르면 숨이 막힐 테고, 땅이 쌓이면 무덤이 될 테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어린 소년은 우주를 택했다

소년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홀로 광활한 우주를 짓고

밤을 마주하며 우주 속의 깊은 우주를 향유했다


이곳은 우주지만 진짜 우주가 아니니 죽을 일은 없을 거야

이불을 움켜쥔 소년의 작은 손은 조약돌 만치 단단했고

연약하게 오그라든 가슴팍은 우주를 잡아먹었다


머리맡을 덮은 까만 우주 속에서 작은 울음을 토하던 소년

무중력에 둥둥 떠다니던 소년이 울면 바다가 태어났고

긴긴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아래로 수직낙하하면 땅이 생겨났다


소년은 점점 넓어지는 눈물바다를 푹 안았다

몇 밤이 지났는지 헤아릴 수 없는 밤들이 지났다

소년의 눈물바다에 생명체들이 한 마리씩 태어나기 시작했고

소년은 자신이 키우는 물고기와 함께 그 터전을 향유했다

또 몇 밤이 지났는지 헤아릴 수 없는 밤들이 지났다


어느 날 물고기는 쇠한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바다가 필요해

너의 눈물바다를 나에게 좀 나눠주렴

그러면 그 끈적하고 깜깜한 어둠을 걷어줄게

더 맑은 우주로 갈 수 있도록 밀어줄게


소년의 표정은 두렵고도 환하였다.

물고기들은 환호하며 소년을 등에 엎고

저 멀리 이불 밖으로 소년을 데리고 나갔다


방 안에 그나마 희고 깨끗한 건 스위치가 유일했다고 한다

정말로 그러했다고 어린 친구는 그제야 덤덤하게 말했다

그나마 희고 깨끗했던 스위치를 켜고나서

소년은 보았다고 한다


더러운 단칸방의 구석진 모서리

검녹색 이끼가 파먹은 어항

수면 위로 둥둥 뜬 물고기


단칸방 앞마당에 물고기를 묻으며

소년은 희망과 슬픔의 경계를 혼돈했다

무엇으로 인간이 일어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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