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 다리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서 생각해
하늘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너의 마음속에 방 한 칸을 빌려 잠시 머물고 있다는 생각말이야. 그러면 대기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굵은 폭우의 느닷없는 비명에 애꿎은 미간 주름이 늘어날 일은 없었겠지. 땅 위를 걷고, 뛰고, 날고, 달아나고, 숨어버리는 것들의 생채기에도 평소와 같이 길을 걸을 수 있었겠지.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시려도 나는 이렇게 말할 거야. 눈을 뜨지 못해 괴롭다는 투정보다는 따사로움과 영롱했던 햇빛을 건네준 시간 동안 행복했었다고, 고마웠다고 전할 거야. 그 추웠던 어느 날엔가 코트에 얼굴을 파묻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안 뒤에 이렇게 생각했지. 차라리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아주 먼 과거부터 당신의 마음이었다고. 무형(無形)의 당신 품 안에서 태어나, 여태껏 사(死)의 세계를 운 좋게 피해 다니며 당신을 이렇게 만나고 있다고. 죽지 않고 살아온 대가는 아무개의 눈물과 비명과 고통을 마시는 일이란 것을. 그 숱한 어느 날에 당신의 힘듦을 짊어지기가 버거워 돌아섰던 순간들이 있어. 생각해 보면 버팀목이라는 게 어디에 있었던 걸까. 떠난 적 없었다는 거야. 형체 없는 어느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살면서 여러 당신들을 떠나보낸 뒤에 떠난 당신들을 영영 떠나버리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앞으로 올 당신들 곁에 내가 서있지 못할 것 같았어. 희한하지. 떠난 것들이 버팀목이 되다니. 이 모든 게 떠난 당신이 알려준 것들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