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된 그의 목에는 공무원증이 걸려있었다.
나는 공직생활 내내 민원과 관련된 업무를 했다. 특히 팬데믹 시기, 민원이 가장 많을 때 체육시설업소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었고 정부는 수시로 집합금지를 내렸다. 나도 그랬지만,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은 이런 민원을 온몸으로 맞았다. 재난지원금도 지급해야 했는데, 행정에서 관리하는 280여 개의 체육시설과 법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체육시설 50여 개까지 사실상 동시에 들여다봐야 했다.
시설을 운영하며 거리 두기를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점검을 나갔다. 점검을 다니다 보면 “대체 왜 정부는 무의미한 거리 두기를 계속하냐”는 불만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라고 하는데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처음에는 날카롭던 사람들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주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다 보면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했고, 어떤 사람은 운동해 볼 생각이 없냐고 권유했다. 어떤 이는 고생한다고 음료수를 내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재난지원금을 줘서 고맙다고 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시청에서 국민신문고 민원을 담당할 때는 결이 달랐다. 시청의 총괄 담당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하루에 쏟아지는 신문고 민원만 해도 수백 건이 넘었다. 민원들을 각 부서에 배부해야 했고,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배부했다. 그러다 종종 어떤 민원들이 들어오는지 찾아보며 민원의 다양한 얼굴을 보았다. 그때 내가 받은 감정은 단순했다. 온라인 민원에는 얼굴이 없었다. 그들은 얼굴이 없고, 담당자의 얼굴도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민원의 제기’와 ‘민원의 처리’라는 기계적 관계만 놓여 있었다. 오프라인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면, 온라인은 AI와 AI의 관계 같았다. 사람의 체온이 없는 곳에 배려는 없었다. 그들은 처리만을 원했고, 처리하는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김포시의 사례도 그랬다. 화면 너머에 있는 것은 사람인데,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사람과 AI를 잘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다. 적어도 사람이 직접 눈앞에 있었다면, 적어도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을 보았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화면 너머의 존재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화면 너머의 존재는 무너지게 된다.
민원 창구의 온라인화는 창과 칼을 들고 싸우던 냉병기(冷兵器)의 시대에서, 멀리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적을 총으로 쏘는 화기(火器)의 시대로 바꾸어 놓았다. 칼과 창이 마주하는 전장에서는 짧게라도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적어도 그와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전쟁터에서 몇십 년간 죽기 살기로 싸우다 보면 설정 피정 다 생기는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를 죽이는 전쟁터에서도 얼굴을 보면 인간으로서 감정이 생긴다.
하지만 온라인 민원은 얼굴을 보지 않는다. 화기가 쓰이는 전장처럼 내가 쏜 총이 누가 맞을지 모르니 죄책감도 희미해진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어진다. 화면 너머의 존재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면 목적 달성이 가장 중요해진다. 좌표를 찍고, 감사 부서에 고발하고,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에게 투고하고, 언론을 활용하는 방식은 가장 손쉽고 가장 빨리 먹히는 수단이 된다. 폭력적인 방법은 더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화한다. 여기에 지역의 유지, 정치인, 언론까지 얽히면 상황은 더 쉽게 악화된다.
문제는 이제 행정에서의 거의 모든 민원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25년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다. 이 화재로 국민신문고 통합 민원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부득이하게 일선 지자체들은 과거처럼 오프라인 민원 창구를 열어 민원을 접수했다. 이때 몇몇 지자체의 민원 접수 현황을 무작위로 살펴보니, 수원시는 평소 하루 1,000건이 넘던 민원이 28건으로 줄어들었다. 또 부천시는 하루 평균 595건이 접수되던 민원이 9건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민원의 98% 이상이 얼굴 없는 온라인 민원이라는 뜻이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은 두 가지 시사점을 남겼다. 첫째, 민원의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는 1차적 지표다. 둘째, 민원 중 상당 부분은 ‘지금 당장’의 시급성이 낮거나, 행정이 개입하기 어려운 사적 분쟁형 민원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신문고 시청 총괄 민원 담당을 해보았기에 더 체감했다. 같은 사안을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행정이 개입할 수 없는 개인의 문제를 행정에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민원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내용들까지 쏟아진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대부분 담당 주무관이 부서장의 결재를 받아 회신한다. 불필요한 소모로 인한 행정력 낭비가 심각함에도, 정부 차원의 대책이나 계획은 체감되지 않는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손에 잡히는 변화는 거의 없다.
화기가 냉병기에 비해 대량살상을 가능하게 했듯, 인터넷 민원 접수는 민원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공무원을 다치게 만들었다. 서울 강동구청에서는 한 민원인이 6년간 4만 건의 민원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동네를 돌며 불법 주정차, 골목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공원에서 흡연하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신고했다. 그는 강동구청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구청 공무원들이 일을 잘하지 않으니 차라리 자신에게 강동구의 일을 맡겨주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한 사람의 민원은 몇 년 동안 행정력을 묶어 두었다. 시민에게 온전히 쓰여야 할 행정력은 온전히 쓰이지 못했다.
2021년 1월, 서울 강동구에서 주정차 지도단속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임용 1년 차였고 30대 신규공무원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부서에 발령을 받아 가장 꺼리는 일을 했다. 전화와 방문 민원인에게 막말과 욕설을 듣는 일이 잦았으며 악성 민원도 많았다고 한다. 그가 1년에 처리한 민원 건수는 6,000건에 달했다. 이제 막 입직한 직원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민원이라는 이름의 반복된 폭력과 분노는 특정 부서와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한 사람의 일상은 매일매일 깎여 나갔다. 그의 절규는 주변에 들리지 않았고 좌절은 되풀이됐다. 그는 자신을 지키려 애썼지만 결국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고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는 한강으로 투신했다.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되는데 당시 그의 목에는 공무원증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개인의 안타까운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명백히 사회적 타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