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025년 상 (악성민원 이야기)

악성민원들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by 유해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다. 요새는 낯선 말이지만, 그때는 먼 친척보다 옆집 이웃이 형제였고 사촌이었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문화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 간의 거리는 지금보다 가까웠다. 대학가에서는 원룸 대신 하숙집이 일반적이었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그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공동체 문화가 있었기에 그 문화는 관공서 직원과 민원인 사이에서도 통용됐다.


공무원들은 관공서의 직원이기 이전에 마을의 주민이었고, 동네에 함께 사는 이웃이었다. 직원 A는 직원이기 이전에 아무개의 자식이었고, 형제였고, 친구였다. 지방이나 농촌 지역은 그런 정서가 더 강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악성민원이 생기기 어렵다. 내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나의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체 문화가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이었기 때문에 슬쩍슬쩍 편법으로 봐줬을 수도 있다. 행정은 법에 의해 규정되어야 함에도 정이나 인연에 의해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힘들 것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그 시절을 보자면 깔끔하지 못했을 것이고, 또 그때의 시선으로 지금을 보자면 차갑고 정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은 희미한 점선이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그 시절엔 실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의지했을 것이고, 또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이 희미해진 2025년의 세상은 선이 선명했던 1995년과 달랐다. 세상은 하숙집이 사라지고 원룸으로 변한 것보다 더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그보다 더 컸다. 하숙집은 많은 공간을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지만, 원룸은 모든 공간이 개인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넓은 하숙집보다는 좁은 원룸을 더 편하게 생각했다. 개인의 공간에 곁을 내주지 않았고, 나와 타인은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나였고 타인은 타인이었다. 나의 곁을 내주지 않는 것처럼 타인의 곁에도 선뜻 다가가지 않는 것이 에티켓이 되었다.


UGhD2iVLBSXjKzvNIj5IO42xVTs.jpg 밥상도 지금보다 정(?)이 넘치는 모습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그 변화는 관공서와 민원인의 관계에도 그대로 이식됐다. 공무원은 누군가의 자식 이전에 ‘직원’이 되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민원은 상대가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지, 내 말이 어떤 상처가 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비대면은 상대를 사람이 아닌 처리 창구로 만드는 착시 효과가 있었다. 접촉의 비용이 대면에서 클릭으로 낮아지면서 말은 더 쉽게 거칠어졌고, 배려는 조금씩 사라졌다. 몇몇 민원인에게는 공무원이든 AI든 그저 나의 일을 처리해 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 같은 따뜻함이 사라진 익명의 자리에는 이유와 목적 같은 차가운 단어만 남았다. 목적 달성을 위해 강하고 거칠게 밀어붙일수록 원하는 목적을 더 빠르게 달성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적어도 관공서에서는 사실이다. 확실히 “주무관님 힘드시죠, 천천히 해주셔도 됩니다.”라는 말보다는 “지금 당장 하지 않을 경우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겠습니다. 내 세금으로 일하면서 왜 이렇게 일 처리가 느린가요? 부서장 바꿔보세요.” 같은 말이 오고 간다. 인간은 환경에 매우 빠르게 적응한다. 악성민원은 불행히도 이런 변화들이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돌연변이다.


사실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아픔에 신경 쓰기보다는 빠르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면 됐다. 위법 여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때로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 행정력을 과다하게 소모시킨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이 했기 때문에 죄책감도 크지 않다. 실제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 태도가 오히려 떳떳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각종 인·허가 사업, 사회기반시설의 설치 및 유지보수를 요구한다. 빠른 정보와 반복적인 압박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익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쓰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첫 번째는 ‘위에서 누르기’다. 목적 달성이 되지 않는다면 고위공무원, 지자체장, 기초의원 등을 압박한다. 민선이 되고 난 뒤 주민의 힘은 강해졌다. 특히 지역 유지이거나 지역에서 유명인사라면 그 힘은 더욱 커진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사람들에게 편의를 보아주려는 유인이 생긴다. 때에 따라서는 지자체장이나 기초의원이 이들과 결탁해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시민을 위해 일하기보다 자신의 권력과 이해관계를 위해 움직이는 순간, 민원은 악성민원이 되고 더 강해진다.


두 번째는 ‘우기기’다. 해줄 수 없는 경우지만 일단 우기고 본다. 가령 수급대상에서 제외되었어도 이전에 수급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법적인 근거가 없어 도와줄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이나 지침보다 물리적 소란이 더 빠른 결과를 만든다.


예전에 면사무소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다. 한 펜션에서 시의 관광지도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 간혹 관광객들이 찾아오면 한 부씩 나눠줬던 것인데,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몇백 부를 달라고 했다. 나는 “지도는 관공서에서 놀러 온 관광객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특정 펜션에만 드릴 수 없습니다. 필요하시면 어느 업체에서 제작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다. 자신의 펜션에 온 손님들은 관광객이 아니냐면서 온갖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면장이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면장에게도 욕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결과는 허무했다. 그냥 달라고 오면 줬다. 나는 절대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당시 팀장은 귀찮고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관공서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우기면 뭐든 해준다. 심지어 저촉될 경우에도 웬만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Dy_zSVX3PLM70_9vutralq_PY6o.jpg 지자체에서 만든 관광지도. 당연히 특정 펜션에서 한 번에 수백개를 가져가라고 만든 것은 아니다.


세 번째는 ‘상급기관 흔들기’다. 고위공무원도 잘 모르고, 떼쓰는 것도 통하지 않으면 상급기관에 제보한다. 지자체보다 높은 광역자치단체,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등 다양한 기관에 제보한다. 상급기관에 제보하면 상급기관에서는 확인을 나오거나 다시 확인해 볼 것을 지시한다. 이미 행정심판에서 기각을 받아도 다시 똑같은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맹지로 향하는 자신의 길에 공사를 해달라는 민원에 대해 거부했다. 시에서는 행정심판까지 갔고 당연히 각하였다. (각하는 심판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해 심사조차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원인은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민원을 제기했고, 나는 또다시 회신을 해야 했다. 토지 보상 후 10년 가까이 지나 자신의 토지 중 남은 잔여지를 매수해 달라는 민원을 받은 적도 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자주 겪었다. 종결되지 않고 반복 가능성이 있는 민원은 더 강하게 들어온다. 끝나지 않고 방식만 바꿔 계속되는 것이다. 혼자서 안 될 때는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기도 하고, 함께 민원을 넣기도 한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민원을 넣을 때 목소리가 훨씬 강하다. 내가 국민신문고 총괄 담당을 했을 때 특정 이슈에 대해 100명이 넘는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회적 문제에 있어 연대의 힘은 필요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일방적으로 올리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많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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