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신화 상 (악성민원 이야기)

by 유해길

악성민원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조직, 문화의 산물이다. 그 산물이 만들어낸 풍경을 비유하자면 흡사 그리스·로마 신화의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다.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저승에서 형벌을 받는다. 그 벌은 높은 산 위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는 데, 정상에 닿으면 바위는 다시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그는 아래로 내려가 다시 바위를 굴려야 한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된다. 시지프스의 삶은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이다.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바위를 계속 밀어 올려야 한다.


공무원들의 민원 현장도 그와 비슷하다. 민원을 계속 처리해도 똑같은 민원이 반복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지프스가 오르는 산은 더 높아지지 않고, 바위의 무게도 늘 그대로지만 민원 현장은 다르다. 민원의 산은 해마다 더 가팔라지고, 바위는 더 무거워진다. 어느 순간부터 ‘끌어올리는 것’ 자체가 벅찬 수준에 이르렀고, 공무원들은 버티기 힘든 임계점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시지프스의 또 다른 차이는, 시지프스는 형벌을 받을 만한 이유가 분명했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신들을 여러 차례 속였고, 그 대가로 벌을 받았으며, 그 또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원 담당 공무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보통 민원인에게 그 정도로 잘못하지 않는다. 설령 잘못이나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폭언과 욕설, 신상공개 같은 가혹한 대접으로 앙갚음을 당해야 할 정도인 경우는 드물다. 공무원들은 업무도 많고 어려운 환경을 견디며 일하는데, 그들의 보편적인 감정은 이유 없이 억울하게 고통받는다고 느끼는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느낀다.


1231.png 시지프스는 최소한 돌을 들고 가는 이유라도 있었지만, 민원 현장의 공무원은 왜 욕먹는지 이유도 모른다.


민원 현장은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고, 대책은 늘 종이 위에만 놓여 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실질적인 대응이 아니라 보고와 문서, 그리고 대응 매뉴얼이다. ‘민원응대 요령’, ‘특이민원 대응 절차’, ‘홈페이지에서 직원 이름 삭제’ 같은 조치들인데 이런 것들은 현장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런 매뉴얼로는 “칼로 찌르겠다”는 협박을 제지하지도 못하고, 밤늦게 당직실로 전화해 담당자 이름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막아주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밀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또 관리자의 태도 역시 대개 “민원인을 잘 달래 봐라”, “네가 조심하면 된다”는 식으로 개인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악성민원 문제를 보고서로만 겪는다. 악성민원이 얼마나 심각한지 현장감을 갖기 힘들다. 보고서는 언제나 현장을 축소하고 평탄화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고, 현상의 이면에 있는 잠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잘 알지 못하니 대응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악성민원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대응이나 별다른 제재가 없으니 계속 반복되고 더 심화된다.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관리자들의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담당 직원들이 잘 처리하면 안 생긴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관리자 및 기관의 대응이 소극적인 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가 직원 교육이다. 나는 10년 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친절·청렴 교육은 대면이든 온라인이든 수십 번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폭력예방, 성폭력, 개인정보보호 및 직무와 관련한 교육 등 수도 없이 많은 교육을 들었다. 하지만 악성민원 발생 시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일부 노조를 통해 진행될 뿐, 기관 측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한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악성민원 문제가 매스컴을 통해 계속 보도됨에도 기관은 늘 친절, 청렴 교육에만 열을 올리고 민원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악성민원 문제는 사회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빨라졌음에도 조직 내부에서는 대응 방향을 찾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악성민원인들 전부를 강하게 처벌하자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그들을 신고해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방법은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방법이 능사는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방식은 효과만큼이나 부작용 또한 크다. 가장 큰 부작용은, 폭언이나 욕설을 한다고 하여 그들에게 벌금을 매기고 잡아간다면 그 이후 민원인의 보복이 반드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악성민원인에 대해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해 보자. 그 상황에서 출소한 A가 주민센터에 가서 민원과 상담하는데, 담당 공무원이 자신에게 불친절하다고 생각해 불만을 호소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이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여 신고했고, A는 법적으로 강한 처벌을 다시 받게 되었다. A는 자신은 출소 후 열심히 살려고 했으나 국가는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사회에 복귀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고, 이에 분노해 담당 공무원에게 앙갚음할 수도 있다.


함무라비법전.jpg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역시 정답이 될 수 없다.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은 시민들이 행정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킨다. 국가의 최우선 역할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교육, 복지, 사회기반시설의 이용 등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민원서비스는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인 동시에 시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그런데 공무원이 편하자고 시민들의 권익을 제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이념에 반한다. 하지만 공무원도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시민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또 행정이 가진 자원은 유한한데, 소수의 사람들이 그 자원을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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