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논의의 출발점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을 지키는 일과 시민의 권익을 지키는 일은 연관되어 있지만, 단순한 제로섬 게임으로 놓아서는 안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제로섬 게임으로 놓는 순간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공무원도 결국 시민이고, 공무원이 무너지는 현장은 시민에게 돌아갈 서비스 품질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진다는 전제하에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정답은 개인 혼자 찾기 힘들다. 국가기관, 시민, 공무원 모두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서로의 조율이 필요하다. 누구의 권익도 제한하지 않되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며, 일관된 기준을 바탕으로 공무원과 시민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러 계층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부작용이 생긴다면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생명과도 같다. 사회적 요구에 의해 발생하지만, 사회 변화에 따라 각종 문제가 생기고 수정해 나간다. 그렇게 하다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지게 된다.
정보공개 청구 제도가 이와 비슷하다. 정보공개청구 제도는 1991년 청주시에서 처음으로 조례로 제정되었다. 오랜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정보’는 두려움이었고, 일반 시민이 관공서에 “정보를 알려달라”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주시의회는 ‘시민의 알 권리’와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정’을 구현하겠다며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제정 후 당시 내무부는 상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의결을 지시했고, 논란 끝에 대법원은 1992년 이 조례를 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정보공개 제도는 법제화의 길을 열었다. 취지는 분명했고, 의미도 컸다. 하지만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도 현실에서는 다른 얼굴을 갖는다. 국민의 알 권리와 행정을 감시하는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대규모의 행정정보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러한 행위는 악성·반복 민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의 경우 한 해 평균 5,000여 건의 정보공개 청구가 접수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일부 청구는 특정인과 단체의 ‘악성민원’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 정보공개를 청구해 놓고 민원인이 신청자료를 열람하지 않거나 취하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는 심각한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다. 이제는 과다한 정보공개청구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고,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법이 되었다. 대안이 필요한 단계에 이른 것이다.
국민신문고 민원 또한 비슷하다. 국민신문고 민원은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다. 위험한 현장이나 공공기관의 문제점, 공공기관이 보지 못하는 상황을 제보하여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도 한다. 국민신문고 제도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1년에 7천 건, 1만 건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이들의 민원 전부를 정당한 민원이라 보기 어렵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국민신문고 제도를 자신의 기분풀이나 좋지 않은 감정을 배출하는 도구로 쓰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급박한 민원이 있는데도 담당 공무원에게 수십 건의 민원이 쌓여 있어 확인조차 못한다면, 이는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무원들은 휴직하거나 면직하여 조직을 떠날 것이다. 신화 속 시지프스는 계속하여 바위를 올리지만 현실 속 공무원들은 그만두는 선택을 한다. 문제는 한 사람이 떠나는 순간부터다. 11명이 하던 일을 10명이 떠안으면 남은 사람들의 업무는 단순히 10% 늘지 않는다.
민원은 처리량이 아니라 대기열이 되고, 대기열은 다시 불만이 되어 민원을 낳는다. 지연과 누락이 생기고 그 작은 틈은 “왜 안 해주냐”는 분노로 커진다. 그렇게 악성민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과부하가 만든 결과로 더 쉽게 증식한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는 곧 남은 사람들의 탈진으로 이어지고, 탈진은 다시 이탈을 부른다. 악성민원이 공무원을 밀어내고, 줄어든 인력이 악성민원을 더 키우는 악순환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특이점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임계점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