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의 해결 방법이 없는 이유
여기까지는 목적이 분명한 악성민원이다. 이와는 결이 다른 악성민원도 있다.
첫째는 마음의 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 달성이라는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민원을 넣는다. 4년 동안 24,000건의 민원을 넣는다. 골목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길에서 흡연하는 사람, 도로 위에 낙엽을 치우라 등등 민원의 종류가 상상을 초월한다. 또 어떤 민원은 일부러 숙직자들이 업무를 교대하는 오전에 전화를 집중한다.
업무 전달이 누락되거나 처리되는 상황을 유도하여 그런 일이 발생하면 ‘직무유기다, 강하게 징계하라’ 요구하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민원을 넣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악감정을 풀고 남을 괴롭히기 위한 것일 뿐이다. 나 또한 민원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민원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둘째는 사적 갈등이나 개인적 문제임에도 지속적으로 민원으로 제기되는 경우다. 과거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서로 어느 정도 배려했을 문제들도 행정기관을 이용하여 ‘대리전’을 치른다. 집 앞에 라바콘이나 물통을(교통 통제를 위해 있는 원뿔 모양의 고무)을 치워달라, 붕어빵 노점을 단속해 달라, 옆집에 소음이 너무 많이 들린다, 우리 집 마당 눈을 쓸어 달라 등등. 대개의 경우 당사자들 간에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마저도 행정의 권한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민원이 밀리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불법에 가까운 행동을 해도 특별한 제지를 하거나 처벌할 규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 폭언, 폭행 등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 주민센터의 복지 담당 직원과 이야기했는데, 그 직원은 민원인에게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기초수급을 받는 사람이 처음에는 출소자의 긴급 생계지원금이 적다고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담당 직원은 지급된 금액은 정해져 있다고 잘 설명했지만, 그다음에는 불친절하다고 시비를 건다.
계속 그를 달래면서 이야기해도 그는 화를 내고 욕설을 하다 마지막에는 ‘퇴근길 조심해라. 밖에서 밤에 나 만나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고 한다. 여성공무원의 경우 성희롱성 발언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딱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악성민원의 해결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정치권을 통한 제도적 정비나 대책 수립은 요원하다. 국회의 법률 제정이나 정부 지침이 마련된 후 현장에서 집행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악성민원을 강하게 처벌하기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철밥통이라 좋지 않고, 민원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은 헌법적 권리를 가진 시민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공무원들이 적당히 욕을 먹는 프레임을 만들고 지지세력의 표를 얻는 방법이 훨씬 쉽고도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굳이 악성민원의 해법을 찾는다는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다.
중앙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법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자체 단위에서 악성민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 부분도 쉽지 않다. 먼저 지자체에는 악성민원 대책을 마련해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정책을 만드는 간부공무원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들도 30년 이상 공직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애초에 현장에서 악성민원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지자체에서 간부공무원으로 있는 사람들은 대개 1995년 전후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처음 공직에 들어왔던 1995년에는 악성민원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그때의 민원환경과 지금의 민원환경은 너무나도 다르다. 당시 민원은 지금보다 적었고, 쉬웠고, 단순했다. 그들은 신규 공무원 때 현장에서 악성민원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다. 그들은 2010년대를 전후해 팀장이 되었고, 현재 과장이나 국장이 되었다. 경험의 부재가 뼈아픈 것이 적절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법칙은 책상에서 수식이나 실험을 통해 인과관계를 도출할 수 있지만, 사회적 문제의 이론과 처방은 개별 사례들을 분석하여 각각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귀납적일 수밖에 없고 경험의 축적이 절대적이다.
그 결과 현재 간부공무원들은 악성민원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현장에 있는 직원보다 낮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에서 제일선으로 맞는 직원과 몇 단계를 거쳐 맞는 부서장이 느끼는 압박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두 사람이 ‘뜨겁다’라는 말을 해도 한 명은 화상을 입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불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다. 전자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강력한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후자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감각이다.
또 대부분의 악성민원에서 저연차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민원인에게 폭언과 욕설을 들어가며 견디는데, 간부공무원들은 텍스트를 통해 받는다. 보고서의 글자를 아무리 강하고 진하게 칠해도, 그것은 평면적이고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담당공무원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버티다 최대한 빨리 도망가거나, 휴직하거나, 그만두거나, 죽거나.
1995년의 공직에는 민원으로 인해 도망가거나, 휴직하거나, 그만두거나, 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25년에는 너무도 자주 들린다. 이 차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조직, 문화의 합성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