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을 함께한 언니들

새장을 벗어나 이제 막 훨훨 날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 2인

by 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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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라면 초등학교 때 투애니원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른적 없는 사람은 없을거다. 심지어 나는 초등학교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친구들과 투애니원 노래에 맞춰 춤을 춘 적도 있다. 그런 우리에게 투애니원은 학창시절의 행복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몇 안되는 그룹 중 하나다. 몇 달전 종영한 ‘퀸덤’에 투애니원의 멤버 박봄이 출연한 걸 보면서 최근 나의 투애니원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다시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투애니원 앓이는 유튜브 영상에서 투애니원의 무대 영상들을 매일 찾아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리더였던 CL이었다. 젠더이슈가 지금만큼 부각되기 한참 이전부터 해외에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오랜기간 살아왔던 CL은 'I'm the Baddest Female.' 이나 'This is For All My Bad Girls Around The World. Not Bad Meaning Bad But Bad Meaning Good U Know' 라는 말을 항상 무대 위에서 외쳐왔었다. 사실 너무 어렸던 당시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었는데, 23살이 된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를 좋아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일종의 연대감(언니!)에서 비롯된 애정도 생겼다.


그렇게 몇 주간 ‘투애니원 앓이’를 하며 눈물 젖은 이어폰을 통해 그들의 노래를 듣던 차에, CL의 컴백소식이 들려왔다. 티저를 하나하나 기다리며 간만에 ‘덕질’의 설렘이 느껴졌다. 12월 4일부터 3주에 걸쳐 매주 두 곡씩 공개하는 방식이었는데, 앨범이 정식 발매되고 나서의 화제성을 보고 이 방식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느껴지기도 했다. 한 때 투애니원의 노래를 즐겼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CL의 컴백을 반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에 사용한 발매방식은 다소 런칭감을 약화시키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감질맛나기도 하면서 다음 두 곡이 나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투자하며 한곡 한곡 음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기도 하다.


CL의 컴백 EP ‘사랑의 이름으로’는 과거의 소속사와의 이별선언으로써, 그리고 새로운 출발로써의 상징인 앨범이 아닐까. 실제로 한참 전부터 CL의 소속사와의 갈등은 수차례 기사화된 바 있고, 지난해 11월 그는 비로소 해당 소속사를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직후 이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은 총 6곡으로 구성되어있고, 모두 '+(곡 명)(곡 제작년월일)+' 형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진짜 의미는 그 만이 알겠지만, 내가 추측해본 바로는 이 제목의 형식부터가 이 앨범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DONE', '안해', 'ONE AND ONLY' 와 같은 곡은 마치 그의 전 소속사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곡 제목이거니와, 곡 제작년월일을 제목에 붙인 것은 본인이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음악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발매를 허락하지 않은 소속사를 향한 저격임을 시원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사이다 같은 곡과 함께, '처음으로' 나 '소중한 추억', '투덜거려본다'와 같은 곡들은 과거 그가,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 역시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며 그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함께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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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곡보다도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이 그의 뮤직비디오였다. 각 곡에 맞는 서로 다른 컨셉의 뮤직비디오가 6편인데, 그의 팬이 아니거나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뮤직비디오는 반드시 6편 모두 보길 바란다. 이번 앨범의 뮤직비디오 연출은 지금까지 K-POP신에서 등장했던 뮤직비디오 형식의 모든 것을 넘어서는 크리에이티비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가장 인사이트 가득했던 영상은 +DONE 161201+의 뮤직비디오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주변 연예인과 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이를 가사에 맞게 배치한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단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각자의 개성을 뽐냈다는 점 만이 감동 포인트가 아니다. 팬들로써는 영상에 등장하는 아는 얼굴, 그리고 팬들의 행복해하는 모습, 그리고 투애니원 멤버들의 모습은 ‘이젠 끝이야’ 라고 말하는 CL의 목소리와 겹쳐 저절로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들게.. 만든다. 이 뮤직비디오는 아마 디지털 시대에 범람하는 컨텐츠에 대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뮤직비디오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아무노래 챌린지보다 반 발자국 정도 앞선 컨텐츠라고까지도 생각한다. 일단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쉽게 꾸밀 수 있는, 세로 그리드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활용했다는 점이 일단 시각적으로 신선하게 작용했다. 또, 멀리 있더라도 영상 출연진들의 스케줄을 서로 맞추지 않아도 되고, 쉽고 빠르게 다채로운 소스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포인트로 팬들이 그토록 바래왔던 투애니원의 assemble을 가능케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굉장히 영리하게 매체 선택을 잘 한 것 같다고 느꼈다.


걸어 보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해
걷는 법도 쉬어가는 방법도 모른 채
13년 동안 많은 걸 이루고, 많은 걸 느끼고
또 많은 걸 잃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을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는
CL로 살아올 수 있어 행복했고,
또 여러분이 나눠주신 사랑이
제 자신을 다시 채워주었습니다.

13살 채린이처럼, 우리 할머니가
항상 해주시는 말처럼, 씩씩하고 당당하게.

누군가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CL로 돌아가 하나씩 스스로 해 나갈 거에요.
제가 경험한 시간과 추억, 그리고 감정을
함께 나눌 생각에 오랜만에 신이 나고 설렙니다.

이 세상 모든 CL을 위해.
사랑의 이름으로,

CL

- '사랑의 이름으로' 앨범 소개 중


이제 앞으로 나의 바람은 그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가 지금의 신이 나고 설레는 마음 그대로 음악을 해나간다면 언젠가 그 '더 넓은 세계'에 도달해있을거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나 역시 그를 '사랑의 이름으로' 응원할 것이다.


✔️CL Official Channel
https://www.youtube.com/channel/UCuX8lXIexG8dRXFx54CVm2Q
✔️CL - +DONE161201+ (Official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_DQXWaIcw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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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텃세를 부려보자면 나는 백예린이라는 가수를 내가 중학교 2학년(당시 2012년)때부터 좋아했었다. 그 계기는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나는 당시 케이팝스타를 즐겨봤었고, 그 우승자였던 박지민이 요즘 뭐하려나하는 생각으로 검색해봤다가 그와 듀오를 결성한 파트너에 더 관심이 생겨 영상과 SNS를 찾아보다가 '나보다 한 살 밖에 안많은데 노래도 잘 하고 옷도 잘 입네! 닮고싶다!'하는, 우상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한건 그가 커버한 크러쉬의 '가끔'을 들으면서였다. 자연스레 그가 속했던 15&라는 그룹까지도 좋아했었다. 그 당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기라 친구들과 자기소개를 했었는데, ‘요즘 듣는 노래는?’ 라는 질문에 '15&의 티가 나나봐' 라고 대답했고 아무도 그 곡을 몰랐던 기억도 난다. 그 이후로 나에게 15&의 노래는 숨듣명이 되었고(최근의 라이브 영상 뿐 만 아니라 그의 15& 시절 라이브 영상은 당시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현재의 백예린의 스타일과는 또 다른. 하지만 여전히 너무나 좋은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 영상들을 하나하나 꼭 보길바란다!), 지금까지도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었는데, 아쉽게도 2015년 '사랑은 미친짓' 이후로 더 이상 15&는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


이후 나는 유튜브를 통해 백예린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또 보고, 그 영상 속 음원을 추출해서 mp3에 넣어 또 듣고, 그리고 그의 인스타그램에 간간히 올라오는 근황들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 기간 사이 그가 발매했던 FRANK, Bye bye my blue, Love you on christmas의 수록곡들을 들으며 나는 등하교를 했고, 한 번의 수능도 치뤘다. 그리고 그 이후 3년의 공백기 동안 그는 꾸준히 자신의 색깔을 담은 자작곡을 만들었고, 이를 몇몇 공연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소속사는 그의 음악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발매하지 못하도록 했었다고 한다. 이후 나를 비롯한 많은 팬들의 바람을 들어주었던걸까. 2019년 3월. 따스하고 낭만 가득한 Our love is great 앨범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과 함께 나는 22살이 되었다.


내가 너에게 보냈던 모든 편지들.

이번 앨범은 19살부터 23살까지 제 생각과 고민, 추억들이 담겨있어요.
정확한 주소가 있진 않았지만 꾸준히 제 마음을 곡에 담아 부치곤 했는데,
이제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보낼 수 있게 되어 기쁘네요!
그 동안 저의 성장을 지켜봐 주시고 애정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랑을 담아, 예린 올림.

Every letter I sent you.

This album reflects memories, dilemmas, and thought processes I had from when I was nineteen to twenty three. With no specific address, I’ve been mailing my feelings in form of songs. And I’m really glad that I can finally mail them to you all. This album is my way of thanking everyone who has been loving me and supporting my journey as a musician.

Lots of love
Yerin

-'Every letter I sent you' 앨범 소개 중


그리고 그의 첫 정규앨범인 'Every letter I sent you'는 그가 기존 소속사에서 나와 독립 레이블을 설립하고 가장 먼저 발매한 앨범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대상에 대한 감정을 한 장의 편지 안에 꼭꼭 눌러담듯, 2장의 CD에 꽉 차게 담긴 18곡의 수록곡들은 그 트랙리스트만 봐도 충만해진다. 베스트 하나를 꼽기가 너무나 어려운 쟁쟁한 18곡 중 굳이 나의 최애를 꼽자면, 자신의 오랜 우상인 Amy Winehouse에 대해 노래한 'True Lover'다. 내가 여전히 Like a dream이나 Domino, Put it in a love song처럼 소울풀한 노래들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하는 탓인지, 재즈풍의 멜로디와 소울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이 곡, 자연스레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음악을 떠오르게 만드는 이 곡은 내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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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수많은 그의 팬들의 '존버는 승리한다.'를 보여준 곡이 바로 'Square'일 것이다. 실제로는 비바람이었던 바람을 봄바람처럼 보이게 만들 만큼 자신의 음악을 행복하게 즐기는 그의 모습은 나 뿐만 아니라 모두를 해변가로 데려다 놓았다. 머리카락과 원피스까지도 함께 분위기를 타는 듯 영상 속 모든 것이 물아일체된 그 문제의(?) 라이브 영상은 곡을 정식으로 발표하기도 전인 2017년에 이미 입소문만으로 영상을 본 모든 이가 '발매 존버'를 타도록 만들었다. 이 곡이 1위를 찍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굉장히 이례적이다. 한 가수의 미공개곡 라이브 영상이 입소문을 탔고 - 음원 발매 요청이 쇄도하여 - 결국엔 발매하게 된. 나는 이것이 다 '뿌린 대로 거둔'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 개인보다 큰 장애물이 가로막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꾸준히, 그리고 부지런히 해왔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멋진 탑이 세워져 다른이들의 눈에까지 보이게 된게 아닐까.


한창 그가 앨범 발매 없이 다른 가수곡 커버를 많이 했었을 때는 혹여나 자기만의 색을 지닌 노래를 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더랬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죽 보니 애초에 그런 생각은 괜한 오지랖이었구나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단단히 구축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백예린(Yerin Baek) - ‘True lover’ (Official Lyric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w4G324C8YDM
✔️[직캠] 백예린(Baek Yerin) - Square
https://www.youtube.com/watch?v=_md16sTcn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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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언니 모두 나의 학창시절을 함께했다는 점도 있지만 더 눈에 띄는 점은 각자를 가로막던, 그러나 본인들을 맨 처음 품어주기도 했던 나름 안전한 보금자리를 용기있게 박차고 나와 자신들만의 색깔이 담긴 예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비슷한 컨셉의 비슷한 멜로디로 포화상태인 가요계에서, 그리고 유튜브와 같이 글로벌 컨텐츠를 향유할 기회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자신의 색깔이 확실한 여성 아티스트의 귀환은 너무나 반갑다. 학창시절 동안 그들과 함께 성장해오며 즐거웠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래오래 즐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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