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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글 Jan 06. 2019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글쓰기는 내 오래된 벗이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머리가 무거우니 몸도 무거워졌다. 그럴 때면 노트와 펜을 들고 거짓과 진실, 무형과 유형 사이를 오고 가며 끄적였다. 노트에 생각이 새겨지면 그만큼 머릿속이 비어졌고 가벼워졌다. 펜은 내게 노트와 머릿속 사이에서 무형을 유형으로 만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펜은 글을 새기며 오류를 한 가지 범했다. 아니 범할 수밖에 없었다. 글은 거짓과 진실 사이를 오가며 어떤 게 진짜인지 분간해내지 못했다. 펜은 자신의 의지와 소신대로 글을 새겨갔다. 그때마다 인물과 장면, 상황들이 내가 본 그대로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첫 글은 어린 스몰웅 그림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스몰웅은 그림일기를 방학 때마다 밀려 거짓된 내용을 만들어내느라 곤욕스러웠다. 처음 일기가 밀리지 않을 때 기억은 하나의 장면처럼 선명했다. 날씨와 내용, 그날 있었던 감정들이 모두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밀리지 않을 수 있겠노라 자만했다. 자만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갉아먹으며 나태를 낳았고 그때부터 일기는 밀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5일 정도 밀려있었다. 처음 5일이란 기간이 대수롭지 않았다. 충분히 쓸 수 있노라 생각했다. 하지만 3일 전과 5일 전에 있었던 일이 헷갈렸다. 날씨가 맑았는지 흐렸는지 당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펜에게 모든 걸 맡겼다. 펜은 순간에 떠오른 무의식 상상들로 노트를 채우기 시작했다. 스스럼없는 움직임이었다. 과감했고 용맹스럽기까지 했다.


펜은 단 하루 만에 5일 치 밀린 일기를 모두 써냈다. 일기는 읽는 내내 거짓된 내용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펜은 마치 노트와 머릿속 사이에서 무형을 유형으로 만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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