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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글 Dec 21. 2018

나는 시주와 구걸을 구별하지 못했다

내 우울이 깊은 것은 세계로부터 타인의 우울이 내게 스며 들었기 때문이다


내 우울한 감정이 깊은 것은 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온 타인의 우울들이 스며들어왔기 때문이다. 초겨울 해는 아직 떠있음에도 오후 2시가 되면 적막한 노을이 위아래로 퍼진다. 주황색을 띠는 노을은 이미 해로서 따뜻함을 갖췄음에도 노을이 질 때면 따뜻함은 포근함을 덧붙인다.


나는 이 포근함을 겨울을 이겨내는 이불 삼아 거리로 나간다.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다다를 때 한 중년의 어머니가 다 헤진 백팩을 메고 구름이 둥둥 떠있듯이 발을 동동 굴리며 서있다. 어머니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으로서 언어를 전달하려 하신다. 눈의 언어는 소리의 언어보다 메시지의 정확성과 명료함이 떨어진다. 소리의 언어의 형태는 글, 문자 자체로 상대에게 새겨질 수 있지만 눈의 언어에는 형태가 없다. 이건 살아있는 감정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되도록 그 언어에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어머니의 앞을 지나치려 했다. 겉은 차갑고 우직한 모습으로. 그렇지만 어머니는 눈의 언어와 동시에 소리의 언어로 내 청각에 훅 들어왔다.

 천 원만 부탁할게요

나지막한 소리가 귓속에 스며들자 우레와 같은 진동이 퍼졌다. 이 우레는 귓속 끝 고막을 건들고 내 가슴속까지 다다랐다. 이때 소리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았다. 산꼭대기에서 외쳤던 소리는 메아리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이 소리는 존재 그 자체로 움직였다. 그러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선’과 ‘악’이 깨어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듯 내 가슴속을 더 요란스럽게 헤집었다.


몇 초나 흘렀을까 ‘선’은 내 몸을 움직였다. 지갑 속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다만 ‘악’은 집요했다. 이 보잘것없는 천 원이 어떤 도움이 될까, 이게 착한 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질문을 털어놓는 ‘악’ 앞에서 ‘선’은 질문들을 가로막고 어머니에게로 나를 움직였다. 다만 이 질문만큼은 하고 싶었다. 왜 돈이 필요하신지.

 어머니 천 원은 어디다 쓰시려고요.

 생활비로 쓰려고

나는 어머니의 대답에 어떤 질문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어머니의 솔직한 대답에 되려 하얗고 깨끗해졌다. 그녀의 대답에는 부끄러움과 속임이 전혀 없었다. 그제야 노을이 생각났다. 하늘이 맑을 때 노을은 더욱 선명하고 빛이 났다. 그 순간마다 나는 넋을 잃고 어떤 질문도 떠오르지 않았었다.


나는 가슴을 노을로 쓸어내리며 생각을 남겼다. 내 우울한 감정이 깊은 것은 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온 타인의 우울들이 스며들어왔기 때문이다. 다시 어머니를 바라보자 구름이 둥둥 떠다니듯 발을 동동 굴리며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바라고 계셨다.


그때 스님 한 분이 처연하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맑은 눈을 뜬 채 어머니 옆을 지나친다. 스님은 곧바로 어머니 옆 상가로 시주를 받으러 들어간다. 스님과 어머니는 서로에게 시주도 구걸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보였을 것이다. 이건 서로가 같으면서 다름을 말하고 있다. 나는 시주와 구걸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다만 그저 살아내는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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