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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24. 2019

대충 살자,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처럼

대충 찍어 온 이탈리아 남부 Bari


정확히 한국에 4개월 반을 머물렀는데, 여행을 마치면서 한국에 돌아가도 기록하는 습관은 잃지 않으리라 했더란다. 그리고 어째선지 거의 3개월만에 일기를 쓰는데, 이유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 지금은 이탈리아 남부 작은 해안도시의 도롯가 베이커리에서 크로아상과 두유라떼로 아침을 먹은 11시다. 신기하게도 여기선 베이커리에 무작정 들어가 “sono vegan”(나 비건이야)이라는 말로 쑥스럽게 운을 떼면 항상 크로아상 하나를 내어준다. 거기다 soya cafe를 덧붙이면 에스프레소 한 잔과 두유 한 잔도 눈 앞에 놓인다. 두유 라떼를 만들어 주는게 아니라 무조건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에 뭘 추가할건지, 그건 네 맘이고. (방금은 라떼를 한잔 마시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더 시켰다. 첫 도전. 그리고 사실 이탈리아에선 ‘latte’ 가 소젖을 뜻하기 때문에 자칫 헷갈릴까 무섭다)



무조건 관광지를 피하겠다고 작은 도시의 주거지역을 주로 싸돌아다녔더니 영어가 전혀 안통한다. 대만을 여행할 땐 그런 상황이 그저 재밌었는데, 거의 이 지역의 유이한(이번 여행의 동반자 유영씨와 함께 있으므로 유일하진 않고 유이하다) 아시안 여성인 상황에선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사라진 것 같아 그저 재밌진 않다. 그나마 재밌는건 요즘 배우고 있는 스페인어와 언어가 꽤나 겹쳐서?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정말 친절해서 어려움이 없다.



내가 남부 이탈리아에 있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처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의 강렬한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커피를 가져다 주며 쓸데없이 윙크하는 남직원, 2-5시에는 가게 문을 다 닫아 조용한 거리, 제일 안 예쁘다던 해변에 갔는데 제주도의 바다와 싱크로율 100%, 이 지역 최고라는 해변에 갔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몇시간이고 물위에 누워 외는 ‘행복해, 행복해’. 또, 매일 사먹는 세계 최고 존맛의 포카치아와 우부래도보단 좀 덜 맛있는 크로아상, 에스프레소, 남자들의 턱수염, 사람들의 천국같은 친절(정말 거의 모든 차가 길을 양보하고 아무리 까다로운 비건 옵션을 요구해도 전혀 귀찮아하지 않는다. 인종차별도 크게 못 느꼈다), 종이봉지에 무심히 담긴 1kg에 2유로짜리 담긴 체리.

이 모든 것들에서 뚝뚝 떨어지는 여유, 여유, 여유.
     

그리고 내내 생각하는 것: 대충 살자,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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