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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24. 2019

좋은 날의 프랑크푸르트, 1년만의 재회

2019.06.17

거의 일년만에 만난 친구 소피아는 어제 만난 것 처럼 편하면서도 10년만인 듯 반가웠다. 삭발한 머리도 여전했고. 프라하의 카우치서핑 집에서 게스트로 처음 만나 라면을 끓여먹던 우리는 그의 나라인 독일에서 일년만에 다시 만났다. 사실 그는 프랑크 푸르트 북쪽의 시골에 사는데, 정말 우연히 프랑크푸르트에 오는 일정이 겹쳐 프랑크푸르트 그의 친구집에 묵고 있었던 거다. 덩달아 나도 그의 친구 집에 발을 들이게 된 거고. 아침으로 그가 해주는 과일 잔뜩 씨리얼을 먹고 (분명 남의 냉장고인데 마치 그의 것 같았다 ㅋㅋㅋ) 그의 어머니와 인사를 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친구 집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 친구 집이었고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사근사근 친밀한 그와 똑닮은 어머니는 나와의 허그 후 그와 한참 허그를 하며 사근사근 대화를 나눴다. 햇빛이 적어도 백년은 된 것 같은 벽에 부드럽게 올라선 배경으로. 영화 속의 관찰자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집을 나서려는데 그만큼 오래 된 나무 계단을 내려가다 갑자기 레이스 커튼 쳐 진 문이 열리면서 이웃집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sophie, 모자 쓰고 나가야지! (삭발한)머리에 화상 입어!” 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독일어는 참 부드럽구나.


집을 나와 걸으며 나는 하늘이 어떻게 이렇게 파랗냐고, 공기가 이렇게 좋냐고 백만 스물 한 번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소피아는 절대 한국은 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리고 우리는 독일에서 파는 비건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읊으며 지하철을 탔다. 오늘의 픽은 밴엔제리라며. 또 나는 그의 민겨드랑이를 놀렸는데 그는 내 머리카락을 놀렸다. 그리고 서로의 옷 위로 튀어나온 젖꼭지와 부숭한 다리털을 바라보며 비겼다고 말했다. ㅋㅋㅋ


벌써 보고싶은 소피아, 우리는 인종이 다르고 국가가 달라 당신이 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한참 모른 채 떠들다가 순간 그걸 눈으로 발견하면 놀라게 된다. 얼마나 완벽히 모든걸 내려놓을줄 아는 사람인지. 얼마나 반성적이고 겸손하면서도 누구보다도 강하고 단단한 여성인지 당신의 존재에 감사하고 감탄하게 된다.


우중충하다던 프랑크 푸르트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잔디 위에 앉아 손수건으로 쓱쓱 문지른 유기농 사과를 나눠먹을 때도, 일년의 공백을 더듬더듬 맞춰나가는 이야기들 위에서도 바램없이 빛났다. 길을 잃어도 이야기로 다리를 놨고, 잔디에서 오줌 냄새가 나도 괜찮았다. 분수대에 앉아 썬크림을 바르는 파란 눈이 하늘보다 더 빛나는 광경을 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라면을 다섯 종류나 사서 먹다가 울고, 설거지 하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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