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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24. 2019

라이언에어 다신 타지않기, 이탈리아의 첫인상

2019.06.18


주의: 유럽 여행에 매우 유용한 정보 담겨있음

라이언 에어를 이용할 때는 0. 꼭, 정말, 죽어도 타야하는가(중요) 1. 공항이 제 위치에 잘 붙어있는가 2. 체크인을 미리 했는가 3. 짐추가를 (무조건) 했는가를 확인해야한다.

내 경우에는 1.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이탈리아 남부 가는 비행기표를 20유로+짐추가 10유로에 샀는데(그것도 왜인지 짐추가가 두번 돼서 사실 40유로가 됐다) 알고보니 공항이 프랑크푸르트가 아니라 100km이상 떨어진 허허벌판에 있었다. 가는 데만 두시간, 게다가 시간이 아침 7시라 무조건 노숙이었다. 처음 가보는 도시의 첫 날 새벽까지 노숙하긴 좀 무서워서 고민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했다. 사실 표 취소할뻔 했다. 게다가 두시간짜리 공항버스니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약 23000원정도를 추가로 내야 했다.

2. 아무 생각 없이 체크인 하러 갔는데, 온라인 체크인을 미리 하지 않아서 공항세를 내야 한다며 55유로를 삥 뜯었다. 정말 자비 없이 무조건 무조건이다. 불쌍해보일까 학생증 카드를 내밀었지만 무조건 무조건이야.

3. 이건 미리 읽어보고 무료로 들고 탈 수 있는 짐이 정말 핸드백 크기만 된단걸 깨닫고 10유로(사실상 20유로)에 추가해놨다. 근데 파리에서 이탈리아행 라이언에어 탄 이번 여행의 동행자 영이는 그걸 몰라서 현장에서 기내수하물 값으로 30유로를 냈다.

나는 소문난 행복회로 맛집인데(응급실 실려가며 농담 하던 사람) 이건 좀 행복회로 돌리기 힘들었다. 어디서 아낀 돈이 있는지 열심히 고민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이 돈이면 이탈리아로 바로 오는 비행기표를 끊었을 것 같은거다. 그래도 오는 길에 프랑크 푸르트에서 정말 보고싶던 친구를 일년만에 만나고 왔으니 괜찮아! 하고 결론 지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아침 9시의 찢어지게 강렬한 햇빛과 동시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아 완벽하다. 이탈리아에 왔구나! 뜨겁다!


그렇게 버스를 타러 갔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타라던 버스에 내릴 정류장이 안 써있다. 당황하는 날 보고 앞에 서있던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첫 대화상대가 영어를 잘해서 다들 잘 할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 남부 소도시는 영어 하는 사람이 정말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함께 고민하다 답을 찾지 못해서 결국 기사님께 어떻게 어떻게 물어봤더니 안 간단다. 체념하다 다시 지도를 보여주며 애타는 표정을 지었더니 기사님이 좀 고민하다가 그냥 타란다. 안 간다면서요?
 
버스를 타는데 아까 도와주던 사람이 따라 타라고 한다. 따라 타서 돈 낼 곳을 찾는데 없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그냥 타란다. 다시한번 눈을 마주치며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또 그냥 타라며 쿨하게 뒷자석으로 향한다. 쫓아가서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자기가 여기 십년 살았는데 그냥 타도 된단다. 사실 그것도 타도 된다기 보다 그냥 타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여기서부터 깨달았다. 대충 살자 (남부)이탈리안의 삶.

그렇게 숙소로 찾아갔는데 숙소 주인이 말이 정말 많다. 아주 많다. 뜬금없이 자기가 변호사, 저널리스트, 슈퍼호스트였다며 그 모든 증거를 가지고 와 보여준다든지. 청소한다더니 한시간 넘게 날 붙들고 자기 얘기만 한다. 처음엔 신기해서 그냥 떠들라고 냅뒀는데 나중엔 좀 한심했다. 내 한심함을 가득 담은 눈빛조차 읽지 못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얘기에 심취해 있는게...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 길을 잃어 근처 아무 가게에 들어가 물어봐야 했다. 인종차별 당할까 잔뜩 긴장한 상태였는데 귀찮을 만한 일에도 환하게 웃으며 반쯤 데려다주기까지 하는 이탈리아 사람의 친근함에 벌써 반해버렸다. 오는 길에는 집 앞 스낵 가게에서 피자(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포카치아였다)를 한조각(거대한 피자 한판 크기의 1/4) 사 먹었는데, 그냥 두꺼운 도우에 토마토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 있지, 하는 맛이었다. 문화충격. 밑면은 바삭하고 윗부분은 비건 치즈 잔뜩 뿌린 것 처럼 촉촉하니 살살 녹는다. 거기다 짭짤한 토마토와 올리브로 천국에 보내주는 맛.

햇빛이 잘 들어오는 내 방에 누워 포카치아를 끝내고 과일도 먹고 (내가 과일 먹으러 나가자마자 쫓아나온 호스트는 갑자기 기타를 존나게 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보다가 잠들었다. 해변에 꼭 가보려고 했는데 눈 뜨니 밤 12시. 시차 적응은 이렇게 망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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