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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24. 2019

이탈리아는 처음입니다. 바다, 피자, 윙크

2019.06.19


파리에서 오는 영이와 만나는 날. 영이나 나나 대충살자 마인드는 비슷해서, 이탈리아 남부 가고싶어! 여름! 휴가! 햇빛! 마리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이탈리아 남부라고 국가와 대충의 지역을 정했고, 결국 바리라는 해안도시로 오게 되었는데 그저 파리와 프랑크푸르트에서 싼 항공권이 있는 지역이라서 그렇다. 우린 정말 여행 할 때 아무 생각이 없으면서도 관광지에 대한 반감만 있어서 대충 에어비앤비에 지도 모드로 괜찮은 숙소를 찾은 뒤 그 지역을 확인하거나 구글맵을 켜놓고 아무데나 마구 클릭해본다. 구글맵으로 보기에 예쁘거나 흥미롭거나 이름이 맘에 들거나, 아무 생각 없이 가보고 싶으면 가는거다.

이탈리아에 하루 일찍 도착해 넷플릭스 보다 잠들고 시차적응 망한 나는 아침부터 영이와 함께 쓸 숙소로 먼저 옮겼다. 숙소 근처에 장이 선 걸 우연히 발견해서 원래 사려던 선글라스를 3유로에 샀고,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와 도로가 스낵 가게에서 포카치아를 먹으며 걸었다. 목적지는 근처 해변이었는데, 그 전 말많은 호스트가 이 동네 해변은 절대 기대하지 말라고 해서 이미 마음으로는 폭삭 실망하고 있던 차다. 근데 웬걸, 바닷물이 제주도만큼 투명한 푸른색이었다. 아니 도대체 여기가 별로라고 하면 다른 곳들은 뭐야? 뭣도 모르고 온 이탈리아에 대한 기대가 늘었다. 바다! 여름! 휴가! 이탈리아!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팔찌 파는 사람만 있고 맥주는 어디에도 없다. 계속 느끼는건데 이 사람들 정말 장사할 줄 모른다. 해변에서 꼭 필요한건 아무도 안팔아.


이탈리아 소매치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오면서부터 내내 스트레스 받았다. 한국에선 카페 테이블에 지갑, 핸드폰 놓고 다녀도 아무도 안 훔쳐가는데. 이제부턴 매일 남은 돈 잘 있나 세고, 여권 있나 확인하고, 가방을 항상 기민하게 사수하며 다녀야해. 덕분에 이탈리아 첫 해변에 가서 수영도 제대로 못했다. 해변에 가방을 놓고 수영하러 갈 수가 없어서. 보니까 이탈리아 로컬들도 자기 가방만 바라보며 수영하더라. 근데 여기 사람들은 너무 친절하고 행복해보여서, 도대체 이 좋은 사람들 중 누가 소매치기를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세상이 무서운거야.

낮잠 시간이 되니 해변이 심히 북적이기 시작했고 놀만큼 놀고 햇빛 쬘만큼 쬔 나는 슬슬 집(여행 중의 숙소는 언제나 집이라고 부른다)으로 향했다. 먹은거라곤 포카치아 뿐이라 너무 배가 고파서 혹시라도 열린 식당이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그리고 운 좋게도 딱 하나 열린 카페가 있었다. 1.5km를 걸어서 열린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는 말, 그말인 즉슨 이탈리아 사람들은 낮잠 시간엔 칼같이 낮잠을 자거나 물 속에 들어있다는 말.


들어서니 디저트와 패스츄리들 뿐이라 혹시나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sono vegan” 했는데, 크로아상이 비건이란다. 믿기지가 않아서 5번쯤 확인했다. 다른 손님 중에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no egg, no butter, no milk 라고 확인해주기도. 혹시나 해서 soia(콩) cafe 해달라고 하니 또 흔쾌히 오케이다. 카페에 두유 옵션은 당연한건가 보다. 게다가 영수증 받고 놀랐다. 5유로는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2.8유로다. 뭐야, 가난할 준비 충분히 하고 왔는데.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다보니 알게 된 게 있다면 남부 이탈리아는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싸다.

도로가 카페 테라스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지나서 젊은 남직원이 에스프레소, 물, 두유를 각각 따로 가지고 왔다. 무조건 순서는 에스프레소다. 뭐야, 나 에스프레소 시켰어? 하다가 두유를 내려놓는 걸 보고 안심. 이미 썼지만 여기선 절대 라떼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하던 에스프레소 인간들이다. 그렇게 들이켜고 낮잠은 잘도 잔다. 그리고 크로아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비건 빵집인 우부래도처럼 바삭하진 않았지만 안에 결이 가볍고 안에 오렌지잼이 너무 달지 않게 들어있어서 맛있었다. 순식간에 하나를 해치우고 곧 도착할 영이를 위해 하나 더 시켰더니 수염난 남직원이 맛있냐고, 알았다고 하며 윙크를 하고 간다. 오, 이탈리아 남자 목격!


이후에 계속 느낀 건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세계 최고로 스윗한데 와중 남자들이 정말 친절하다. 이유 없는 호의와 친절과 미소, 그리고 윙크가 줄줄이 이어지는 곳이다. 남성들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세상을 많이 알지만, 어쨌든 여행자로서는 모두의 호의가 편하고 행복하긴 했다.



도착한 영이와 함께 숙소 중심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물론 무임승차. 정말 아무도 돈 안내는 것 같다. 같이 버스 기다리던 또다른 관광객 일행만 버스 티켓을 사기 위해 두리번 거리는 것 같던데, 버스 티켓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구. 살 수 있는 곳도 거의 없어서 무임승차를 의도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대충 살자 이탈리아.

시내의 식당에서 야채를 종류별로 다 올린 이탈리안 화덕피자를 시켰는데 (6유로) 웬 거대한 피자가 등장한다. 정말 거대해서 당황했다. 야채들이 완벽하게 구워져서 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환상적인 맛이었지만 도우가 너무 짰다. 아무튼 우리의 첫 이탈리안 피자라는 데에 의의(지내다 보니 이탈리아 음식은 그냥 다 더럽게 짜다). 그리고 오가닉 샵에 갔는데 유기농 비건 와인이 4-5유로. 여긴 비건 뿐만 아니라 유기농 접근성이 좋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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